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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ㅣ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N25076
˝나는 스스로를 억지로 죽음에 몰아넣었다.˝
표지가 예쁜 책에 손이 간다. 오래전부터 눈독들이고 있다가 드디어 팽귄 클래식 에디션 레드 세트를 구매했다. 이 에디션 세트 중 단편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것도 있고 절반 이상은 이미 다른 출판사 버젼으로 읽었지만 이런 사실이 나의 소장욕구를 이길수는 없었다.
첫번째 읽을 작품으로 비트문학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버로스의 <퀴어>를 선택했다. 아직 안읽어본 작품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퀴어 문학이 읽어보고 싶어서였는데, 혹시 이 작품 때문에 퀴어문학이라는 장르가 생긴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분명한 이 작품은 중편소설의 분량에다가 재미까지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퀴어 문학의 특징중 하나가 비극적 사랑인데 <퀴어> 는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비극적이지만 왠지 쿨한 느낌이 강했다. 맥시코시티를 배경으로 아편중독자이자 퀴어인 주인공 리는 퀴어들과 어울리면서 문란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한 술집에서 청년 앨러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앨러턴은 퀴어가 아니었고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리는 그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보내고, 결국 앨러턴은 리의 구애를 일부만 받아들인다.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리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침울했다. 웃음이 흐르는 다정한 토요일 밤이 사라졌는데 리는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랑이나 우정에서 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수 있는 관계, 무언속에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연계를 만를려고 늘 애써 왔다. 이제 앨러턴이 갑지기 문을 닫았고, 리는 몸으로 아픔을 느꼈다. 자기 몸의 일부를 다른 사람을 향해 망설이며 내밀었다가 그 내민 곳이 잘린 듯했다. 리는 절단되고 남은 곳에서 흐르는 피를 믿기지 않는 듯 충격에 싸여 바라보았다.] P.79
리는 앨러턴에게 진심이었지만 앨러턴은 아니었다. 그는 리의 애정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리에게 자신의 빚을 갚게 하고, 비싼 음식을 얻어먹는다. 그러면서 그의 구애에 조금씩 냉정함을 보인다. 그리고 리에게는 여자친구 메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리의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싫어하면서도 호의를 받은 모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리는 자신의 시각을 앨러턴에게 맞출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앨러 턴의 무관심을 더 확실히 확인하는 일이어서 고통스러웠다. 나는 앨러턴이 좋았고 그래서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어. 돈으로 매수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어.] P.82
리는 앨러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남아에리카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환각제의 일종인 야헤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앨러턴에게 함께 떠나자고 이야기한다. 처음 앨러턴은 그와 함께 떠나는걸 달가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리의 경제적인 보상을 포함한 남아메리가 동행 제안을 받아들인다.
[“누가 네 자주성을 간섭하겠어? 원한다면 남아메리카 여자 전부와 자도 돼, 일주일에 가령 두 번이라도 이 파파를 다 정하게 대하기만 하면 돼, 과한 부탁은 아니잖아? 마음대로 떠날 수 있게 왕복 티켓을 사줄게.”] P.94
남아메리카에서 리에 대한 앨러턴의 태도는 조금씩 변한다. 당초 일주일에 두번만 사랑을 나눈다는 계약을 이행하면서도 조금더 부드러운 태도로 리를대한다. 낯선 남아메리카 땅의 이곳 저곳을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친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정에 두사람은 육체적으로 지쳐가고, 앨러턴은 다시 리에게 짜증을 낸다. 리는 자괴감에 빠진다.
[리는 그 사람들이 거기서 무 엇을 하는지, 자신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여전히 꿈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앨러턴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 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P.139
리와 앨러턴은 결국 야헤를 찾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앨러턴은 남아메리카에서 리를 버리고 떠난다. 그의 집착은 결국 자기혐오로 끝나게 된다. 리는 다시 맥시코시티로 돌와오고 앨러턴을 찾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과 함께 남아메리카로 떠난 후였다. 리에게 앨러턴은 꿈이었을까?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끝은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특히 동성애의 경우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더 그럴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사랑은 받아달라고 몸무림 칠수록 더 비참해지고 멀어질 뿐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여서 그런지 이야기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결말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