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읽히는 소설.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다.

누군가의 매력에 빠진 사람은 그가 잘못을 저질러도 쉽게 화를 내거나 그를 버리지 못한다. - P17

사랑이 시작되는 건 한순간이다. 미움이 쌓이는 데엔 평생이 걸릴 수 있지만, 일곱 살 때 그걸 알았다. 그 반대가 아니란 것.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선 평생을 노력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 P30

미옥이 지닌 아름다움은 인생에 도사린 위험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가시 박힌 아름다움이란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미옥이 지나갈 때 타박하는 듯한 눈길로 몸을 훑고 지나가는 어른들의 시선을 보았다. 아름다움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나칠 때는 더 그렇다. 누군가는 힐난하고, 누군가는 손에 쥐고 싶어 한다. 둘 다 공격적이긴 마찬가지다. - P113

미옥은 책을 좋아했다. 읽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 바라보고, 옆에 두는 걸 좋아했다. 읽는 건 나와 루비가 했다. - P116

눈을 감고 열을 세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열번의 다른 호흡이 열 번의 같은 호흡이 될 때까지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결이 같은 호흡을 나누면서 깨끗해지길 꿈꿨다. 우리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을 씻기고 태우고 묻었다. - P159

손을 씻는 일은 쉬웠다. 개를 만지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는 일보다 쉬웠다.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는 일, 그건 미치도록 어렵다. - P179

어쩌면 우리는 진짜 비밀은 이야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P249

어른들은 자기가 한 말의 앞뒤 맥락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에게 한 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과 진실이 따로 없으며, 한 말을 잊고 안 한 말을 했다고 믿는다. - P397

모든 이별은 언덕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소한 이별이라 해도 그게 이별이라면, 올라선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기. 그게 이별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낙차 때문이다. 당신이 있는 곳과 없는 곳, 거기와 여기, ‘사이’라는 높이. 당신이 한사코 나와 떨어져 존재하려는 높이. 기어올라야 하는 이별도 있을까? 그건 죽은 사람, 하늘로 돌아간 사람뿐이다.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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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09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문장이 많네요. 위의 글 읽어 보고 동감해요.^^

새파랑 2023-07-09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페크님이시면 좋아하실거 같습니다~!! 저도 이 분의 다른 책 더 읽어보려고 합니다 ㅋ

페크pek0501 2023-07-10 15:34   좋아요 1 | URL
작가가 장석주 시인의 배우자예요. 나중에 생각났어요.^^

새파랑 2023-07-10 19:42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문학가족이라니 근사하고 멋집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