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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로반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N23016
"집을 올리는 사람 자신은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어. 그럼 누가 그 집에 살지?"
생각하지 않으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걸까? 아무 생각없이, 타인에 의해, 타인이 만든 허상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한다면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저 도구일 뿐이다.
[온세상은 아무런 의문 없이 오로지 존재하는 것 자체에만 몰두해 있었고, 보셰프만이 거기서 떨어져나와 침묵하고 있었다.] P.12
코틀로반(구덩이)를 파내려가는 사람들은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허울좋은 이상을 쫓을 뿐이다. 코틀로반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저 사람들에게 왜 관이 필요한 거예요? 죽어야 하는 자는 부르주아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P.102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배척한다, 가진자에게 분노한다, 함께 가기 보다는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한다. 그러나 자신들 역시 적으로 몰릴 것이라는, 결국엔 버려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보시오. 오늘은 내가 이렇게 사라지지만, 내일은 당신들이 사라지게 될 거요. 오직 당신들 우두머리만 사회주의에 도달하게 될 테니 두고 보시오."] P.170
대의라고 생각해서 그럴수도 있다.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그들만의 사상을 위해. 하지만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다. 현재가 비참한데 장미빛 미래가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대의는 누굴 위한 걸까?
분노는 또다른 분노를 만들 뿐이다. 사람은 생각해야 된다.
줄거리 요약보다는 즉흥적으로 리뷰를 썼다. 읽는 내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생각났다. 두 작품다 풍자적이지만 <동물농장>이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다면 <코틀로반>은 무겁고 진지하며 한번에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물농장>에 비해 좀 더 깊이가 느껴졌다. 조지 오웰이 옆나라(?)에서 러시아를 바라봤다면, 플라토노프는 러시아의 직접적인 당사자였기 때문일까?
미래에 대한 생각없이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모습과 빈농세력이 부농세력을 추방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내 무덤을 파고 있는건 아닌지 잘 생각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