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멋진 단편집을 만난것 같다.
너무좋네.










<구멍>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P11

<코요테>

아버지에게 분명히 있기는 했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 P18

<코요테>

"아직은 아니야. 시내에 머무르고 있었어. 처음에는 떠날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떠날 수 있어."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깨끗이 청산하려고 한다."

"깨끗이 청산한다고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깨끗이 청산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33

<코요테>

"사람 죽여본 적 있어요?" 어느 날 밤, 나는 저녁을 먹으러 온 그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나를 노려봤다. "아니." 그가 말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 편이 철수하고 있었거든. 그즈음 전쟁은 끝났으니까." "하지만 그러라고 했으면 그랬을 거예요?" "그래. 그랬을 거다." - P36

<코요테>

"인생 최악의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형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본다는 것은." - P44

<아술>

"있잖아, 폴." 그녀가 말한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 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 P57

<아술>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말한다. 그냥 찰과상이야. 그러나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척추를, 등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몇 분여를 보낸 후에야, 우리는 마침내 뒤로 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 - P87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남은 생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가정을 일구고 그의 곁에서 늙어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런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란 것을, 나는 알았다. - P99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진실을 말하자면, 로버트를 만난다는 결정을 내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는 12월의 그날 저녁 이래 줄곧 그를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가 만난다는 얘기를 콜린에게 할 마음은 없었지만, 내가 무슨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도 않았다. 나는 혹여나 콜린이 길에서 로버트와 나를 스쳐지나더라도 그가 그 상황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행동이 배신임을 아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 어쩌면 나 자신의 가슴뿐이었다. - P100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 P102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 P106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당신이 언젠가 이것 때문에 나를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헤더. "무엇 때문에요?" "이런 만남."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그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요." - P108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나는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 P119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 P126

<머킨>

그녀는 내가 밖에 나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게 한없는 위안이 되었음을 알기나 했는지, 나는 가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 P185

<머킨>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 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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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2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 동안 절판되어 있다가
다시 나온 모양이네요 :>

네이버 블록 제 리뷰에 어떤
분이 책을 팔라는 댓글을 달
아 주셔서 기억이 나는 책이
네요.

새파랑 2022-11-02 12:12   좋아요 1 | URL
아하 그런가요? 이책 좋네요. 체호프 느낌도 좀들었습니다 ㅋ 중고로 샀는데 득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