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보다는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더 좋았다.




시게모토의 일기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늙은 대납언도 역시 그렇게 부정관을 닦으려 했던 것이다. 이 대납언의 경우는, 잃어버렸던 한마리 학(鶴)-소리를 구름 밖으로 끊고 그림자를 명월속으로 숨긴‘미인의 요염한 모습이 언제까지나 눈앞에서 사라지지를 않아, 애타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노력했음이 확실하다. 그날 밤 시게모토의 아버지는 그렇게 친자식을 상대로, 부정관의 수행법부터 시작해 자기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를 저버린 그분을 향한 원망과 뜨거운 그리움, 정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이의 미모를 심장 속에서 몽땅 씻어내어 애달픈 괴로움에서 풀려나고 싶다. 이런 자신이 미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쨌든 지금 그 때문에 수행을 하는 것이다, 하고털어놓았다. - P307

사랑하는 분의 환영을 부여안고 밤낮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딱하고 가엾게 여겨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흔한 말로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머니 모습이라면, 그냥 귀하게 간직하려 애쓸 것이지, 더러운 길바닥 시체까지 끌어들여서 썩어 문드러진 추악한 모습으로 생각하려 함에는 무언지 욱하고 노여움 같은 반항심까지 끓어올랐다. - P309

시게모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는 맨땅 위에 꿇어앉아, 아래에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무릎에 온몸을 내맡기듯 기댔다. 하얀 모자 속에 파묻힌 어머니의 얼굴은, 꽃무더기를 뚫고 내리비치는 달빛을 받아 뿌옇게 보였지만 여전히 귀엽고 자그마했으며 마치 원광(圓光)을 뒤에 달고 있는 듯했다. 40년 전의 어느 봄날, 휘장 그늘 속에서 그 품에 안겼을 적의 기억이 금세 영롱하게 되살아나고, 한순간에 시게모토는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 손에 들린 황매화 가지를 거칠게 젖혀내면서 자신의 얼굴을 어머니 얼굴 쪽으로 더욱더 디밀었다. 어머니의 검정 소매에 스민 향내가 문득 먼 옛날의 잔향(殘)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마치 응석이라도 부리듯 어머니 소매에 얼굴을 문지르면서 눈물을 마음껏 쏟아냈다. - P324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부단히 이끌어온,
아니, 아마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이끌어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주는
유일한 별. - P338

그런 그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철저하게 정치나 사회적 상황에는 등돌린 채 오로지 맛있는 음식과 노인 나름의 성욕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쓰미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처녀작 「문신」이래 격동하는 사회상황에서 유리된 채 개인적인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해온 다니자키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남이야 무얼 하든 나는 내 갈 길만 걷겠다고 선언한 다니자키는 결국 자신의 길에서 대성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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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18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두 편을 엮은 책이어서 ˝만˝보다는 이라 하신거군요^^;; 잘 모르는 게 계속 티가 납니다.
찾아보니 만(卍)이네요^^

새파랑 2022-10-18 20:35   좋아요 0 | URL
제가 한자에 좀 약해서 ㅋ 친절하게 표현을 못했습니다 😅

얄라알라 2022-10-18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새파랑님 오해하신건 아니시죠?^^;;댓글에..주어가 없다보니 오해하시게.해드렸나봐요 제가 소설을 잘 안 읽다보니 제가 모르는게 티가 난다는 말이예요^^;;;제목인줄 모른 거 있죠^^;;제가요

새파랑 2022-10-18 23:55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ㅋ 오해는 전혀 없죠 ㅋ 그냥 조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