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P19
병원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 P22
새로운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P23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한여자를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P32
참회록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이십사년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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