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읽었는데..어치 결론이 나려나


통계상으로도 연 수백 건에 달하는 실종 신고서가 접수되나 발견될 확률은 의외로 적다고 한다. 살인이나 사고로 실종됐다면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고, 납치 같은 경우라도 관계자에게는 일단 그 동기가 명시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 실종은 단서 잡기가 몹시 힘들다. 가령 그런 경우를 순수한 도망이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실종이 그 순수한 도망에 해당될 것이다. - P9

그러나 그 논리적인 추리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논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 P11

남자의 목적은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래땅에 사는 곤충은 몸집도 작고 색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한 마니아가 되면 나비나 잠자리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들 마니아들이 노리는 것은, 자기의 표본 상자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도 아니고 분류학적 관심도 아니고 물론 한방 약재를 찾는 것도 아니다. 곤충 채집에는 훨씬 더 소박하고 직접적인 기쁨이 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노력한 보람도 있는 셈이다. - P15

‘모래 암석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 P18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속처럼………. - P20

난, 이래 봬도 모래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는데 말 이죠, 모래란 말입니다, 이렇게, 일년 삼백육십오일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동이 바로 모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절대로 한곳에 머물지 않는..….… 물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래서, 살아 있는 생물은 보통 모래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균도 마찬가지죠……… 아아, 그러니까, 즉 청결의 대명사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방부제 역할은 하겠지만, 썩게 하다니, 말도 안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부인, 모래 자체가 썩다니요………… 그리고 무엇보다, 모래란 어엿한 광물이란 말입니다. - P32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면서 왜 이 부락에 눌러붙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군……… 모래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모래를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오. 어이가 없어서!……………이런 짓은 못하겠어, 못해… 나 참,동정의 여지가 없군! - P44

사람들이 흔히 가리는 부분은 그렇게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데, 반대로 아무거리낌 없이 드러내놓는 얼굴만 수건으로 가리고 있다. 물론 눈과 호흡기를 모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 대조가 나체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 P48

미친 듯 소리를 지른다.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의미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이 악몽이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뜻하지 않은 실수에 벌벌 떨면서 그를 모래 구멍 속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튀어나온 목소리는 가냘프고 맥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모래에 빨려들고 바람에 흩날려, 어디에 닿을지 허망하기만 하다. - P53

뭐, 좋아……… 인간은 각자 타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모래를 쓸어내리든 뭘 하든, 멋대로 해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아무튼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허술히 보면 안 되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없으니까 말이야……… 마침 담배도 떨어졌고……… - P68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여기서 나간 사람은 아직 없어요……… - P116

그러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이 기아와 갈증으로 쓰러지는 것은 생리적인 결핍보다 오히려 결핍에 대한 공포 탓이라고 한다. 졌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코끝에서 땀이 떨어졌다. 또 몇 분의 1cc 수분을 빼앗겼다고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적의 술수에 빠져들었다는 뜻이다. 물컵에서 물이 증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생각해 보라. 불필요한 소동을 피워 시간이라는 말을 충동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P120

아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 보라, 바로 저기가 지상이다………. 사방 어디든, 세계의 끝까지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뻗어 있는 지상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수첩 사이에서 말린 꽃이 될 것이다………. 독초든 육식 식물이든, 엷고 반투명한 한 장의 꽃잎이 되어, 거실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전등빛에 비춰보며 늘어놓는 경험담의 양념이 된다. - P164

…………아래를 보면 안 된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 등산가든 빌딩 청소부든 텔레비전 송신탑의 전기공이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든 발전소의 굴뚝 청소부든, 아래에 신경을 쓰면 그때가 바로 파멸의 순간이다. - P165

살려줘!
늘 정해져 있는 말! …………아무렴 어떠랴………. 다 죽어가는 판에 개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판으로 찍어낸 싸구려 과자 신세라도 좋으니, 아무튼 살고 싶다! ………이제$곧 가슴까지 묻히고, 턱까지 묻히고, 코밑까지 빠지면…………. 그만! 이제 그만! 제발 살려줘! ……………무슨 일이든 약속하겠어! …………제발 부탁이니까 살려줘! 살려달라고. - P19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7-07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책을 검색해 보다가 민음사에서 시리즈로 사기열전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두꺼운 책으로 샀는데 이렇게 낱권으로 나오다니 후후~~~. 민음사에서 나올 줄 알았으면 민음사 걸로 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모래의 여자>, 기대되는 책이네요. 어떤 내용일까요?

새파랑 2022-07-07 18:15   좋아요 0 | URL
요책 영화로도 있더라구요 ㅋ 모래의 늪에 빠진 기분입니다. 그냥 읽고나면 체념하는 기분이 듭니다 ㅎㅎ

제가 오늘이나 내일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