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명작 중 하나이지 않을까?


릴라는 흰 반코트를 입고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팔에 책 몇권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미소 띤 채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 안녕, 뤼도 다시 보게 되어 기뻐. 그렇잖아도 너를 찾아가려던 참이야. 어떻게 지내?

나는 벙어리처럼 묵묵히 있었다. 이번에는 내 안에서 경악 같은 것이 올라오더니 두려움으로, 그리고 공포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 P294

저런 네가 그 애를 너무 만들어낸 거야. 4년 동안의 부재는 상상에 너무나 큰 몫을 남기지. 꿈이 땅에 닿을 땐 늘 충격이 생기는 법이야. 생각이 몸을 갖게 되면 제 모습을 닮지 않게 되지. 프랑스를 되찾게 될 때면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 몰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이건 진짜 프랑스가 아니야. 다른 프랑스야!‘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너무 많이 안겼어. 그들이 떠나고 나면 재회는 잔인할 게다. 그렇지만 네가 그 애를 다시 찾게 될 거라고 뭔가가 내게 말해주는구나. - P298

사랑에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 너는 네 기억으로 살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상으로 산거야. - P298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 P362

릴라가 다시 나의 비밀스러운 삶에 함께 살게 된 것이 이제 두달 남짓 된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고 일부러 자지 않았는데, 신경쇠약 상태가 그녀가 나타나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밤 그녀를 불러낼 수 있었다. - P370

릴라는 분수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삭발된 채였다. 손에이발기를 든 미용사 시노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살짝 물러나서 자기 작품에 감탄하고 있었다. 릴라는 여름 원피스 차림으로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몇 초 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내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부짖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시노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릴라를 품에 안고 군중을 헤치고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이미 행해졌고, 이루어진 뒤였다. 사람들은 ‘어린 여자‘에게 점령군과 함께한 잠자리의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훗날 이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끔찍한 짓거리 너머로 남은 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그 모든 친근한 얼굴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흉측했다. - P410

이 이야기를 마침내 끝내려 한다.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 - P4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7-0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새파랑님 이 책 완독 하 신 후

눈물이 가득!^^
.·´¯`(>▂<)´¯`·.

새파랑 2022-07-04 00:00   좋아요 1 | URL
눈물을 한가득 품고 리뷰를 쓰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리뷰 쓰는걸 잠시 접었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