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정화가 된다 ㅋ

"꼭 사람 같다." 샘이 말했다. "꼭 사람 같아. 용기를 내야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미룬 거야. 머지않아 용기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개도 뭣도 아니란 걸 줄곧 알고 있었던 거다. 결국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미리 알았던 거야." - P19

그것은 열망하지만 나서지 못하는 느낌, 의심이나 공포는 없지만, 시간을 초월한 숲을 보며 스스로 얼마나 약하고 무력한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느껴지는 비참함이었다. - P21

그들이 매년 11월만 되면 사냥을 나가면서도 실제로 곰을 죽이겠다는 의도 따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그 곰이 죽지 않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지금껏 곰을 정말 죽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서였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 P21

"무서워하는 건 괜찮아. 그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두려워하면 안 돼. 숲속 동물이 너 해치는 경우는 네가 그놈을 몰아붙일 때, 그리고 그놈이 네 두려움을 냄새 맡을 때 말고는 없어. 무서워하는 건 곰도 사슴도 겁쟁이 무서워할 수 있어. 용감한 사람이 겁쟁이 무서워하는 것과 똑같아." - P29

그때 소년은 곰을 보았다. 어디선가 나타나거나 숨어 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거기 꼼짝도 하지 않고, 바람 한 점 없는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얼룩무늬를 그리며 내리꽂히는 풀밭에 서 있었다. 곰은 소년이 꿈에서 본 것만큼은 아니어도 기대했던 것만큼 컸다. - P31

숲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이 아니라 차츰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언젠가 거대한 농어가 지느러미 한 번 까딱하지 않은 채 연못의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지는 모습을 봤을 때처럼 곰도 그렇게 아무런 움직임 없이 황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 P32

"길들이고 싶지 않아요." 샘이 말했다. 또 한번 소년은 그의 콧구멍의 떨림과 맹렬한 눈에 감도는 희부연 빛을 보았다. "나는, 저 개, 나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엇 두려워하는 것보다 길들여지는 게 차라리 낫지만, 둘 다 아닐 거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요." - P45

"우린 그 개를 길들이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저 그 개가 제 본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거죠. 우린 그냥 그 개가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 뿐이에요. 저장고에서 나오려면, 나와서 또다시 갇히지 않으려면 샘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그놈이 앞으로 올드벤을 추적해 몰아붙일 바로 그 개예요. 우리가 벌써 이름도 지어줬어요. 라이언이라고." - P48

요즘 내가 늙어가는 조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말이지. 내 명령이 무시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명령을 내리는 순간 이미 무시당할 거라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확인은 싫다는 말이지. - P51

그때 분이 달려나갔다. 소년은 분의 손에서 번뜩이는 칼날을 보았다. 분은 사냥개들 사이를 뚫고 발에 치이는 놈들을 옆으로 차내면서 달려나가더니 아까 노새에 올라탈 때처럼 곰의 등으로 몸을 날려 배 부근에 다리를 감았고 왼팔은 라이언이 매달려 있는 곰의 목 아래쪽으로 뻗었다. 칼날이 번쩍 하고 위로 솟았다가 내려왔다. - P79

새벽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올드벤을 보러 마당으로 나갔다. 부릅뜬 눈, 으르렁거리듯 젖혀진 입술 밑으로 보이는 닳은 이빨, 발가락이 잘려나간 발, 지금까지 박힌 총알(산탄, 소총 탄알, 원형 탄알을 포함해 무려 52개였다)이 피부 여기저기 딱딱하게 응어리져 있었고, 분의 칼날이 마침내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은 자국이 왼쪽 어깨 아래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 P87

조그마한 마당은 곧 사람으로 가득 찼다. 따뜻하고 나른한 햇살 아래 어떤 이는 앉고 어떤 이 는 선 채로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조용한 목소리로 사냥에 대해, 사냥감과 그 사냥감을 쫓던 개들에 대해,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사냥개들과 곰과 사슴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거대하고 푸르스름한 개 라이언은 가끔씩 눈을 뜨고 잠시 동안 숲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숲을 기억에 담아두기 위해, 아니면 숲이 아직도 거기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 것 같았다. 해가 질 무렵, 라이언은 죽었다. - P89

"그렇습니다. 제가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요. 애초에 제 것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거부합니까? 애초에 아버지의 것도, 버디 삼촌의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제게 물려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제가 거부할 수도 없지요. 게다가 이 땅은 할아버지의 것도 아니었고따라서 아버지와 삼촌에게, 그리고 제게 상속될수 없으니 또한 거부할 수도 없지요."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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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com글쓰기 2022-06-02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어요!! 깊은 잔잔함이 있었어요ㅜ

새파랑 2022-06-02 13:0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포크너 읽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