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요!" 이렇게 말하는 특유의 목소리와 태도.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이 바로 이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울려 퍼지는 듯하다. 나중에요! - P11
어쩌면 해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테니스장이거나, 혹은 그가 도착한 날 집 안과 주변을 보여 주다가 어쩌다 철제 단조 대문을 지나 텅 빈 내륙 지역을 따라서 한때 B와 N을 이어 준 버려진 철로를 향해 둘이 걸었을 때인지도. - P14
"나중에, 아마도." 잘 보이려고 애쓰는 내 부적절한 노력을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밀어내는 듯한 정중한 무관심이었다. - P15
절대로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지만, 왜 그럴 수 없는지 알려면 계속 바라봐야만 했다. - P19
그날 저녁 일기에 내 마음을 적었다. 당신이 그 곡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한 말은 과장이었어요. 내가 진짜 하려는 말은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는 거였어요. 당신이 반대로 나를 좋아한다고 납득할 만한 행동을 보여 주기를 바랐죠. 잠깐 동안 당신은 정말로 그랬어요. 하지만 내일 아침에는 내 생각이 또 바뀌겠지요. - P23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어요. 친근하게 다가가는 나에게 또다시 얼음처럼 차갑게 반응할 때조차.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여름을 눈보라 속으로 가져가는 쉬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 P24
내가 무엇을 원했을까? 가차 없이 속마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왜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최소한으로 바란 건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또래보다 덜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내가 그의 발아래에 너무도 쉽게 떨어뜨려 버린 존엄성을 그가 고개숙여 주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였다. - P44
지옥편에서 프란체스카는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희망을 갖고 기다려 보자. 나는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 P45
2주일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당신과 가까워지는 지옥을 어떻게 견디죠? 그는 알기나 하는 걸까? 내가 알려 줘야 할까?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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