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일리스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 P110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지 않았으나,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 그들의 우정으로 전과 달라진 방 안에는 그들의 삶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후회나 과거에 있었을지 모를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단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 - P117
그는 기억 밖에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을 건드렸다. 기억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히 그곳에 있었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 - P120
그 이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장식품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실을 속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도자기 한점도 받지 않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쓸 것이다.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 P120
내 콤팩트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또는 햇볕이 좋은 날 가게의 유리창에 얼굴이 반사될 때나 거리의 거울을 힐끗 볼때면 종종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 오래 바라볼 때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한때 어린아이였던 그림자에 내 상상력이 부여한 환상이 아닐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지 궁금해진다. - P144
"좋은 소설을 두 번째로 읽으면 언제나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여요." - P148
당신은 늘 최선을 다했어, 코리." 이 말이 자리에 남아 대화를 매듭지었다. 사실이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었고,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 그들 삶의 고비를 누그러뜨렸다. - P157
코리는 누알라를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고, 조각상들이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려보내자 누알라는 처음으로 분노가 조금씩 흘러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감화되어 평온함에 잠긴 누알라는 조각상의 체념을 느꼈다. 실패한 것은 누알라가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 P182
지난 수개월 동안 두 사람 역시 비밀을, 일어나는 일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비밀을 공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 P196
자기 앞에 펼쳐진 창창한 시간 언뜻 보게 될 다른 비밀과 배신들 때문에 울었다. - P200
"떠날 거예요." 외삼촌의 질문에 존 마이클이 대답했다. 피나는 그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존 마이클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떠나는 것은 옛날부터 이어진 전통이었고, 기회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그 기회를 붙잡기도 전에 떠나겠다는 결심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다. - P202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사랑하는 남자를 뒤따라 골웨이까지 먼 길을 걸어간 여자가 있었다. 하루하루 만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존 마이클이 그리웠던 피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피나는 다시 천천히 마을로 돌아왔고, 존 마이클이 두 사람을 위해 마련한 방은 피나의 머릿속에서 여태껏 본 무엇보다도 더 선명했다. - P214
말하지 않았으나 이해한 사랑의 규칙은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내는 괴로움 속에서도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사랑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둘은 그 사랑을 지니고서 몸을 떼고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미래가 지금 보이는 것만큼 절망적이지 않다 는 것, 그 미래 안에 여전히 두 사람의 과묵한 섬세함과 한때 사랑이 만든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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