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만 보고 사랑이야기 인줄 알고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좋았다.


"이제 너도 책 속으로 도망치는 구나." 독서의 기쁨을 발견한 아들에게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책에 대한 어머니의 이런 생각, 좋은 글이 지닌 마술과 같은 힘이나 광채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그를 슬프게 했다.

(독서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슬프다.) - P101

단 하나의 포르투갈어 단어와 이마에 적힌 단 하나의 전화번호가 도대체 어떻게 질서 정연했던 삶에서 그를 떼어내고, 베른에서 멀리 떨어진 포르투갈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게 할 수 있었을까.

(인생의 전환점은 우연이 일어난다.) - P110

"그레고리우스, 그건 글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말하는 건 글이 아니라고요. 그냥 말을 하는 거예요." - P180

지금의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그시절로 다시 가고 싶은, 다시 한 번 손에 모자를 쥐고 따뜻한 이끼 위에 앉아 있고 싶은 것이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길 원하면서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겪은 나를 이 여행에 끌고 가려고 하는 것, 이는 모순되는 갈망이 아닌가. - P184

그런데 어쩌면 마리아 주앙이 그에게 눈이 멀지 않았다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 압도당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을 거요. 그에게 필요했던 게 바로 그거였을지도 몰라요. 그를 지극히 당연하게 자기와 똑같이 보는 태도 말이오. 자연스럽고 수수한 말과 눈빛과 행동으로 그를 그 자신에게서 구원할 동등함...

(친구란 동등한 사람이다.) - P196

"난 지금 내 인생이 완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게 아니야. 현재 완성되지 못한 자기 인생에 대한 의식 자체가 불행이라면 누구나 평생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지. 반대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인생을 위한 조건이야. 그러니 불행을 만드는 요소는 분명히 이와는 다른 그 무엇이지. 그건 바로, 완성되고 완전한 경험을 하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야." - P264

나는 밤을 새운 얼굴로 아침의 태양을 마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인생이 가볍든 힘들든 가난하는 부유하든 상관없이 더 많은 삶을 원한다. 끝나고 나면 모자라는 인생을 더 이상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은 삶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삶이 끝나는걸 원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 P269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 P279

과거의 흔적은 왜 나를 슬프게 하는가? 그 흔적이 뭔가 기쁜 일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 P301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자기 연인을 희생시키려고 해.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어. 그가 계속 이 말을 되풀이해. 한 사람 대 여러 사람의 목숨, 이게 그의 계산이야. 날 도와줘. 도와줘야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야." - P369

"아주 오래전 일이오. 30년도 넘은 일. 하지만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 것만 같소. 내가 약국을 그냥 가지고 있어 다행이오. 내가 우리의 우정 속에서 살 수 있으니까. 가끔 우리가 결코 서로를 잃은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소. 그냥 그가 죽었을 뿐이라는 생각…."

(죽는다고 끝난건 아니다.) - P440

"네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 - P448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그게 나타나면 단 한순간에 확실해지지요.

(나타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없는지 모른다.) - P455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 P489

기차가 지나는 거리만큼 기억이 지워지고, 세상이 조금씩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가 베른 역에 도착할 때면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아진다면 여기에 머물렀던 시간도 사라지는 걸까? - P534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 P537

왜 완행열차를 선택했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지금 들고 있는 책을 마저 다 읽으려고 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기차만큼 책 읽기에 좋은 장소는 없다고, 새로운 것을 향해 자기가 이렇게 마음을 활짝 여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그래서 완행열차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기차는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맞다.) -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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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05 1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세문집 완독파!
새파랑님 새해 명작 독파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2-01-05 20:22   좋아요 2 | URL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새벽에 열심히 읽었습니다 ^^

서니데이 2022-01-05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은 책을, 읽은 척으로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
작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알고 봐서 그런지, 읽은 책으로 잘 보이는데.^^
새파랑님,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1-06 00:04   좋아요 2 | URL
제가 글씨를 잘 못씁니다. 악필 😅 즐거운 새벽 되세요~!!

서니데이 2022-01-07 00:10   좋아요 1 | URL
글씨 괜찮은데요.
저도 손글씨를 잘 못 써요.^^

새파랑 2022-01-07 00:18   좋아요 2 | URL
ㅋ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데 😅 그냥 좋은 문장 따라 쓰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도 맑음 2022-01-07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표지를 보고 사랑이야기인 줄 알고, 바로 패스 였는데, 오~ 옮겨놓으신 문장들을 보니... 어느덧 제 장바구니로~ 클릭 하는 순간.... 절판인가요?

새파랑 2022-01-07 11:57   좋아요 2 | URL
저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군요? ㅎㅎ 저도 이책 절판이어서 우주점 오프라인에서 구매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