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부가 나름 충격과 반전이었다.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지? 공감은 안되더라도 이해가 가는 행동들이 있다.

그녀는 생각했다. 평범한 처녀라면 살롱에서 만인의 주시를 받는 이 청년들 가운데서 한 남자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천재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은 평범한 인간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 자기 생각을 이끌어가지 않는 법, 내가 가진 재산이 없을 뿐인 쥘리엥 같은 남자의 반려가 된다면, 나는 계속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터. 나는 결코 일생을 무명의 존재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이 목적인지, 이목이 목적인지) - P156
처음에 그는 자기 불행의 극심한 정도를 깨닫지 못했다. 그는 감동했다기보다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성을 되찾으면서 그는 자기 불운의 깊이를 느꼈다. 그에게는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 소멸해 버렸다. 가슴을 찢어놓는 절망의 통증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육체적 고통을 말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어떤 육체적 고통이 이 고통과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허물어진 정조와 자존심에 대한 회한으로 그날 아침 마틸드는 쥘리엥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목수의 아들인 일개 예비 사제에게 자기를 지배할 권리를 주었다는 끔찍한 생각에 아연했던 것이다. 자신의 불행을 과도하게 생각할 때면 그녀는 이렇게 뇌까리기까지 했다. 이건 마치 하인에게 몸을 내맡기고 나서 후회하는 꼴이지 뭐야. - P177
마틸드는 확실히 올바른 정신이 아냐.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덜 사랑스러운 것일까? 그 이상으로 예쁠 수가 있을까? 가장 우아한 문명이 줄 수 있는 생생한 기쁨 모두를 드 라 몰 양은 한 몸에 다 지니고 있지 않은가? 지나간 행복의 추억이 쥘리엥을 사로잡아 이성의 작용을 빠른 속도로 파괴해 버렸다. - P181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제 상상 이상으로 사랑에 빠져 있을 뿐이지요. 탁월한 귀족 신분이나 많은 재산을 타고난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드 뒤부아 부인도 자기 자신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을 것입니다. 그 부인은 당신을 바라보는 대신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잘 모릅니다. 두세 번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동안 그 여자는 상상력의 힘을 발휘하여 당신을 자신이 꿈꾸던 영웅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현실의 당신을 본 것이 아니고요. - P224
아! 용서해 주세요. 절 멸시해도 좋아요. 하지만 절 사랑해 주세요. 저는 이제 당신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이 오만한 여자가 드디어 내 발밑에 무릎을 꿇었구나! 쥘리엥은 생각했다. - P265
그는 생각했다. 결국 내 소설은 끝났다. 그리고 그 공적은 오직 나 혼자에 의한 것이다. 그는 마틸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나는 이 자존심덩어리로부터 사랑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 여자의 아버지는 이 여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이 여자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 P311
그때 미사를 주재하던 젊은 사제가 거양 성체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드 레날 부인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부인의 머리가 숄 주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쥘리엥은 부인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부인을 향해 피스톨을 쏘았다. 탄환이 빗나갔다. 그는 두번째로 방아쇠를 당겼다. 부인이 쓰러졌다.
(이런 갑작스러운 전개라니...) - P320
그러나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해도 사람들은 내 젊은 나이가 동정을 살 만하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한 젊은이들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 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까지 지키는 자존심)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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