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에는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는 외로운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드디어 그는 장교가 되었다. 파고들어야 할 책도, 상관의 목소리에 떨어야 할 일도 더는 없었다. 모든 게 지나간 과거였다. 증오스럽게만 여겨졌던 생도 시절의 모든 날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달과 햇수를 채우고 어느새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P8
"죽은 국경선이죠. 더 이상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국경선이라는 의미에요. 그 앞에 큰 사막이 있지요."
"사막이라구요?"
"그래요, 사막. 돌과 메마른 땅. 사람들은 그곳을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불러요." - P22
그는 문득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꼈고, 지금까지 그토록 자연스레 지녀온 군인으로서의 자신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실감했다. 안정된 주둔지와 편안한 집, 항상 곁에 있었던 밝고 유쾌한 친구들, 사관학교 야간 정원에서 감행했던 소소한 모험들로 이뤄진 평옥한 체험들 속에서 의기양양했던 그의 자신감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 P27
온 요새를 통틀어 그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요새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서도 드로고를 생각하는 영혼은 없을 것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관심사가 있고, 저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해도 모자르다. - P42
요새의 군사체계가 광기어린 걸작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산길을 지키는 수백명의 군인들이라니. - P45
가능하면 빨리 떠나세요. 그들의 광기에 물들면 안됩니다. - P68
어제 같기만 한 시간이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일정한 리듬으로 그렇게 사라져갔다.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더 느리게 흐르지도, 불운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더 빠르게 흐르지도 않았다. - P82
"더군다나 규정에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규정상 경보가 필요한 경우는 오직 적의 위협이 있을 때입니다. 내용은 정확히 이렇습니다. ‘적의 위협이나, 군대가 출현할 경우, 그리고 의심스러운 자가 성벽 경계에서 100 미터 이내로 접근한 모든 경우." - P111
대령은 기다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양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때까지, 그는 미신에 따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간단한 인사나 욕망의 자백일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녀의 환영은 늘 무로 돌아갔으니까. - P140
그렇게 인생의 한 장이 천천히 넘어가면서 이미 끝나버린 다른 장들과 합쳐지고, 맞은편에서 또다른 장이 펼쳐진다. 넘어간 쪽은 고작 얇은 층에 불과하고, 그에 비하면 앞으로 읽어야 할 장들은 무궁무진한 종이 뭉치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위여, 다음으로 나아가려면, 언제나 삶의 일부인 또다른 장은 써버려야만 하는 법. - P180
그렇게 세상 전체가 조반니 드로고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 P182
요새에서 불빛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느 누구도 마음속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전쟁이 망상으로 돌아간 일에 대한 그들의 실망은 너무나 컸다. 떠나는 동료들을 보면서 무의미한 성벽을 지킨답시고 잊힌 소수로 남겨진 치욕이 너무나 생생했다. - P221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바라는 바를 점점 줄이는 법을 배웠지. 일이 잘되면 대령 직급으로 집에 돌아가게 될 걸세."
"그 다음은요?"
"그 다음엔 끝이지." - P227
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무언가를 믿기가 어려워진다. 누군가와 그 애기를 나눌 수도 없게 된다. 바로 그 무렵,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상관없이 인간이란 항상 멀리있음을 드로고는 깨달았다. 누군가 고통을 겪는다면 그건 온전히 그의 몫일 뿐, 그 고통의 작은 부분이라도 다른 누군가 대신 짊어져줄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괴로워할 때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 해도 그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지는 않으며, 바로 여기서 삶이 고독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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