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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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어의 정원」 - 강보라

오랜만에 구입하여 읽기 시작한 소설 보다 시리즈, 그 첫번째 수록작부터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그렇게 읽은 세 편의 소설들 중 두 편이 너무도 좋았어서, 그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나마 남기고자 한다. 첫 수록작 「바우어의 정원」의 주인공은 세 번의 유산을 겪은 여배우 ‘은화’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연극 오디션의 연기 소재로 활용하여 재기를 꿈꾼다. 그렇게 참여한 오디션장에서 은화는 후배 ‘정림’을 만난다. 정림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를 극화하여 이 오디션에 참가한 것인데, 이 둘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빚어지는 트라우마의 발현과 구원의 과정이 너무도 애틋하고 뭉클하다. 단편의 분량임에도 감동의 규모가 거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드」 - 성해나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전혀 없는, 오히려 부정하기까지 하는 ‘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에 대한 설정부터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것이 ‘성해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드」는 그런 주인공이 한국을 방문하고 관광하던 와중에 ‘타이극기’ 집회에 뭣도 모르는 채 참여하며 벌어지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 또한 성해나 작가다운 유머가 듬뿍 느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여기에 더해 메세지 하나를 던지는데, 바로 주인공의 생경한 한국 체험을 통해 주인공과 아버지 간의 어색하고 서투른 관계를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안내하던 ‘미스터 김’으로 인해 어렸을 적 아버지와 있었던 일화를 떠올리며,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잠시나마 깊이 생각해보는데… 이 또한 뭉클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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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주차장 찾기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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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13기

내 주변에 나만큼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는 없다. (없을만 한가….?) 하지만 ‘종종’ 문학을 읽는 친구가 있긴 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친구에게 책추천을 요청받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가 내게 너무도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 한국문학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님?

그 말을 들은 나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작년에 한강 작가님에 노벨상 받은 것만 봐도 한국문학이 이룩한 성취가 엄청나다는 걸 방증하는데, 감히 네가 뭔데 그딴 소리를 지껄…이냐고 말하려다 내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그 친구가 위 발언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더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한국문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분위기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흠…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혼자서 곱씹어보고 또 자세히 대화도 나누어보니 대충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를테면 한국 문학은 장편보다 단편 소설집이 많이 출간되는데, 그런 단편들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특히 단편소설도 한국 사회의 일면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소설들이 많다는 것이랄까나…? 소설의 문체 또한 차분하고 부드럽게 진행되다가 위기-절정 부분에 들어 조금씩 날카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그런 느낌.

그런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작가가 생겼다. 바로 이번에 읽은 <무료 주차장 찾기>의 오한기 작가. 네가 지금까지 읽어온 한국 작가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딴 판의 글을 쓰는 작가라고 자신있게 소개해줄 수 있다. 나 또한 한국문학을 지금까지 많이 읽어왔지만, 오한기 작가만큼 독특하고 튀는 ‘그만의’ 글을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크… 그 친구가 오한기 작가의 글을 읽고나서 느낄 당황과 경이를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쯤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아니 못하겠다. 지금까지 읽어온 오한기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이 책 외에 <인간 만세> 한 권밖에 없지만, 항상 이 작가님의 작품은 줄거리 요약이 너무 어렵다. 대신 내가 느끼는 오한기 작가의 문체에 대한 내 감상을 말해보고자 하는데,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극한의 리얼리즘과 환상문학이 교묘하게 결합한 문체’라는 것! 도입부를 읽을 땐 ‘이게 에세이야, 소설이야?’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러다가 서사가 진행될수록 말도 안되는,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일이 없는 사건들이 막 발생하는데, 그 지점에서의 기묘함이 아마 오한기 글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이번 연작 소설집 역시 그러했다. 때문에 한국문학의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나 약간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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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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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 명의 삶 전체를 톺으며 진행되는 소설은 분명 <스토너> 말고도 많다. 그러나 <스토너>에서 묘사되는 ‘스토너’의 인생만큼 고요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던데, 그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너의 삶의 속성, 성격 때문에 이 소설이 또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스토너의 삶은 참 애잔하다. 온갖 실패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에 (거의) 실패했고 이 영향으로 자식과의 관계도 그리 썩 좋지 못하다. 문학도로서 꿈을 키워 결국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직장 동료와의 불화로 인해 결국 그는 퇴직 전까지 ‘정교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말년엔 암에 걸려 제대로 된 반격 하나 못하고 죽음을 맞으니, 어찌 이리도 허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가.

그러나 이런 스토너의 불행과 슬픔이 비단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토너는 자신의 삶에 닥쳐온 여러 고비와 역경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아주 우직하고 굳건하게 버텨낸다. 차마 이겨낸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지지 않는다. 스토너는 버티고, 견뎌낸다. 우리도 삶을 살면서 자신의 고집과 신념을 버릴 수밖에 없는 때가 종종 찾아오지 않는가?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적어도 나는 그들의 요구에 맞게 나 자신을 바꾸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태도를 묵묵히, 끈질기게 지켜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도 경외스러웠다.

게다가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찍 깨달았고, 그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추진력을 보인다. 이것은 우리내 인생에서 크나큰 축복처럼 여겨지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애당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때문에 아무리 소설 속 스토너에게 닥치는 일련의 사건들이 불행과 시련처럼 보이더라도, 이 소설이 그렇게 암울하지 않았던 것은 스토너의 삶에서 비쳐보이는 행복과 존경이 빛이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로 <스토너>를 읽는 동안에 들었던 감상은 우울이 아닌 뭉클함, 침울이 아닌 애잔함이었다. 그러므로 스토너의 삶에서 언뜻 비치는 우리의 삶을 발견하는 순간, 분명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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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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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 전에 사두고서 계속 묵혀두던 ‘숙제’같던 책을 드디어… 완독했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적기에 앞서서 나의 MBTI 유형 중 S 성향이 90%가 넘는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상상력이 풍부한 N 성향과 달리 나는 아주 현실적이고, 피부로 와닿는듯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인 판타지, 환상문학 등을 즐겨 읽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만 SF 장르의 경우는 판타지와 결이 조금 다르다. 내가 느끼기에 판타지는 말도 안되는 ‘마법 뾰로롱~’으로 읽히는 반면,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납득하게 된다. 물론 ‘상상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장르라는 점은 판타지와 같으므로, SF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얼마 간의 쉬는 시간, 이른바 ‘쿨타임’이 내게 꼭 필요하다.


그래서 ‘앤디 위어 우주 삼부작’을 다 읽기 까지 연 단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르테미스』 읽고 몇 개월 있다가 『마션』 읽고 몇 년 있다가, 올해 2월이 되어서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도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나의 취향과 대척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며 힘들었던 점을 먼저 말해볼까 한다.


가장 먼저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은, 다름 아닌 ‘두께’이다. 총 분량이 무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나지만, 그래도 벽돌책이라 부를 정도의 두툼한 책은 부담이 되긴 한다. 두번째는, ‘하드 SF’라는 점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나 이론의 내용이 이 소설에는 상당 부분 등장했다. 그러나 뼛속부터 문과인 나로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100% 이해하기가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흐린 눈으로 넘긴 페이지들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국한된 불평인데, 나는 과거와 현재 시점이 ‘교차’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뭐랄까, 몰입을 막 하려던 차에 시점이 바뀌면 다시금 툭 끊기는 기분이 든달까? 근데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딱 그랬다. 


이쯤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줄거리를 소개해본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태양에너지를 빨아들여 지구가 얼어붙을 위기에 처한다. 엄청난 식량난은 물론이고 극심한 빙하기가 도래하여 인류가 아예 멸종해버릴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가 파견되어 우주로 탐사를 나간다. 이때 소설은,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깨어난 그레이스의 시점과,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그레이스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참여하게 되는 과거 시점을 교차하여 전개한다. 


이렇듯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나의 취향과 대척되는 부분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만큼 잘 쓰인 우주 SF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사와 과학적 상상력이 모두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이 작품은 ‘구원의 서사’를 담고 있다. 구원의 이야기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서사이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재밌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션』과 이 작품을 비교하고 싶은데, 『마션』이 ‘전 세계가 한 인간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 인류를 구원하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만큼 안쓰러우면서도 벅차고 애틋하고 감동적인 감상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이 법칙을 따르는 명작 SF소설인 것은 분명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는데, 이해 못했던 부분들과 과학적 상상력이 부족하여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던 장면들을 어서 빨리 영화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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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강두식 옮김 / 빛소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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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세계문학전집서포터즈

4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의 작품이지만,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어떻게든 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토지측량사 K와, 이를 막으려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400페이지 내내 계속해서 반복된다. 정말 ‘처절’하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갖가지의 노력을 끈질기게 발휘하여 K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그 매번의 시도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곤 한다. 이들 역시 K의 노력을 악착같이 방해하고 무마시킨다.

사실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받아들 때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셔서 걱정이 조금 크긴 했지만, 막상 받아보니 작품 자체의 난이도가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 번역이 아주 유려하고 잘 읽혔다. 문체의 가독성에 예민한 나로서는, 좋은 번역 덕에 작품 내용이 머릿속에 잘 그려져서 어렵다는 감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용의 흥미도 측면에 있어서는 조금 힘들긴 했다. 하나의 큰 사건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성으로 들어가려는 K의 노력 -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방해’의 작은 서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인, 심지어 ‘미완성’으로 끝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카프카가 왜 이 작품을 쓰고자 했는지를 곱씹듯 생각하게 되었다. 카프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진 않더라도 그 존재 만큼은 분명하게 감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해설을 비롯해 다른 여러 사람들의 감상들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막연했던 주제의식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하여 이에 대해 조금 적어볼까 한다.

실존주의 문학을 다룰 때 항상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부조리’,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전적 정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과 세상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혼돈스러운 상태 사이의 갈등’.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불행한 일이 아무런 인과없이 일어날 수 있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말이다. (철학 무지랭이가 겨우 받아들인 개념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이를 바탕으로 <성>을 본다면, <성>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K의 노력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마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삶의 ‘부조리’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불행들, 이를테면 부모님의 죽음이랄지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사고 등은 특정한 ‘인과’를 거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불행들은 아무런 징후나 조짐 없이 정말 ‘갑자기’,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친다.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체 왜 K를 방해하는지, K가 성에 못들어가게 막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훼방만 놓는다. 어쩐지 우리 삶에 닥쳐오는 부조리와 비슷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그럼에도, 불현듯 부조리가 우리 삶에 닥쳐와도,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버티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의 모습 역시 소설 속 K의 모습과 닮아있다. 아무리 막혀도, 좌절되어도 K는 성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라는 부조리를 마주하는 K는 바로 ‘우리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거야말로 ‘카프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아닐까. 느닷없이 찾아오는 부조리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라는 것. 부조리적 상황만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고차원적인 주제의식을 던지는 이 소설이 어째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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