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 버튼 위픽
김동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동식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군 복무 중일 때 후임이 내게 <회색 인간>을 추천해주기도 했고, 감명깊게 읽었던 에세이 <소년을 읽다>에서도 김동식 작가님과 관련한 부분이 나오기도 해서 호기심이 많이 갔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김동식 작품을 피해왔던 이유는, 전반적인 분위기나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동시에 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

김동식 작가에 대한 추천을 들을 때마다 항상 같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어둡고 찝찝하며, 빠른 전개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등등. 여기서 ‘어둡고 찝찝’한 것은 나의 취향과 거리가 멀게 느겨졌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는 것 또한 어쩐지 열린 결말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나는 아주 ‘꽉’ 닫힌 결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서점에 갔을 때 어쩐지 이 책이 눈에 띄었고, 단편 하나만 수록한 ‘위픽 시리즈’로 김동식 작가에 입문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

<백 명 버튼>을 읽고 나니, 앞선 설명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백 명 버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버튼을 100명이 누르면 그 중 2명이 실패하고 1명이 성공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악마’가 이 버튼을 들고 와서 대한민국 정부와 판매 계약을 하며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참…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어둡고 찝찝’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이 왠지 싫지 않았다. 작가가 상상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른 이 이야기의 전개가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기발한 소재와 개연성 있는 전개가 만나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된 듯하여 읽는 동안 딴 생각 없이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말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것이 ‘열린 결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궂은 본능을 일말의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로 인해 상당히 씁쓸하고 묵직한 여운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런 류의 결말이라면 나는 독자로서 대환영이다.

.

이렇게 김동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듯하다. 다만, <백 명 버튼>의 경우에는 작품 하나만 수록되어 있어서 작품이 선사하는 여운의 크기와 무게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으나, 다른 작품집을 읽게 되면 어쩐지 버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에서 김동식 작가님을 검색해보니 해피엔딩 이야기만을 수록한 작품집 <인생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호. 다음으로 읽을 김동식 작품은 이 놈(?)으로 찜해두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5-25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기 작품에서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 정도까지 추천드립니다.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베일>은 ‘키티’라는 여성 주인공의 불륜을 들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상대는 타고난 비주얼과 피지컬을 갖춘 ‘찰스’.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는 자신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한 어느 시골 마을로 가는 출장에 동행할 것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시 이혼 소송을 제기할 거라고 협박한다. 키티는 찰스에게 달려가서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하지만 찰스는 나몰라라(?)를 시전한다. 이로 인해 키티는 온갖 배신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힌채 남편을 따라 콜레라의 소굴로 가게 된다.

.

초반 2-30%의 내용만을 설명한 것이지만 이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를 다 본 듯하다. 그래서 이후로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미심쩍었으나, 기우였다. 서머싯 몸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말은 결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가치관으로서의 ‘여성’의 역할만을 알고 있었던 주인공이 점차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보려는 그 노력의 과정들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문체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

정말 재밌게 읽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감동적인 여운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동이라 함은 성장소설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성취하게 되는 정신적인 성장 내지는 성숙의 결말에서 비롯되는 마음이었다. 불륜으로 시작해서 성장으로 마무리되는 서사를 담은 <인생의 베일>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교훈과 감동을 모두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직전에 읽은 <달과 6펜스>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심산이었다. <달과 6펜스>가 좋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작품 중 간간이 끼어있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았던 게 가장 크다. 이를테면,


📖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달과 6펜스>, 11p)

📖 하지만 동정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미덕이긴 하나 그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미덕을 남용하는 수가 많다. (같은 책, 31p)

📖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같은 책, 176p)

📖 사람이란 사교적인 관계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같은 책, 229p)


다시 읽어도 너무 좋다다만 <인생의 베일>에서 이러한 문장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기대했던 <달과 6펜스> 매력 하나를 느끼진 못한 듯하여 (아주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독 이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1
박민정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보고선 서독과 동독의 통일과 관련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려나… 싶었다. 보통의 한국문학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서독’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으므로 (중고서점에서 아주 깨끗한 상태의 절반 가격인 상태였던 건 덤으로) 이 책을 구입하였다. 물론 그런 부분들이 아주 없진 않다. 다만, 이 작품에는 그 외에도 더 많은 주제들이 담겨 있었다.

.

이를테면, 주인공은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교수의 압박에 못 이겨 브레히트의 번역되지 않은 원문을 토대로 논문을 써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물론 이 대학 교수가 성착취를 한다거나, 악의적으로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주인공은 힘들어한다. 악의 없는 순수한 호의가 더욱 괴로운 법이니까.

.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수 있었으나, 이 작품은 그 외에도 해외 입양아의 문제도 다루고 대학원생의 성폭력 문제(주인공의 지도교수와는 다른 인물), 서독 이모의 개인적인 서사까지 다루고 있다. 각각의 주제와 서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선 분량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싶지만 이 작품에는 100페이지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판형도 작고 자간도 넓은 ‘핀 시리즈’이다보니 일반적인 소설책들과 비교하면 분량은 100페이지보다도 더 줄어들 것 같다.

.

그래서인지 <서독 이모> 읽으면서 이야기에 공백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바로 장면이 전환된다던지, 몰입이 깊어질 즈음 이야기가 끊긴다던지워낙 짧은 분량이라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완독할 있었지만, 아쉬운 느낌을 지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미스 플라이트> 추천 받긴 하였으나, 솔직히 때문에 호기심은 동강이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지음 / 아작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들을 모두 사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천 개의 파랑>과 <나인>을 연이어서 읽었는데, 두 작품 모두 내게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읽었던 작품들은 내게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랑과 나의 사막>은 생각보다 가독성이 떨어져서 조금 실망했고,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너무 재미없어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작가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식어만 갔다…

.

사실 앞서 말한 두 작품이 별로였던 것은 나의 독서 컨디션이 좋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SF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읽어왔기 때문에 SF에 물렸을(?) 수도 있고… 뭐 어쨌든 그래서 한동안 SF 장르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SF에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순수 한국문학이나 세계문학전집들만 골라서 읽어왔다. 하지만 사람은 아주 간사한 동물인지라, 계속 그런 것들만 읽다보니 새삼스레 SF로 머리를 리프레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책장에 꽂혀있던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와 바로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

책을 읽으면서 잃어버렸던 천선란 작가님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금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톡톡 튀는 소재들이 매력적인 작품도 있었고, SF적인 색채가 강하지는 않지만 먹먹한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심지어는 4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작품도 있었으니, 이정도면 아주 만족했던 독서였다는 다했지 않은가. 천선란 작가님의 최근 작품이라고 있는 <노랜드> <이끼숲>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끝까지 구매욕구를 참았는데, 책으로 인해 어쩔 없이 나의 지갑이 다시 한번 열릴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다리 위를 두 남녀가 거리를 둔 채 걷고 있다. 그러다 여자가 다리 난간 위를 넘어 밑에 있는 강으로 뛰어내리고, 뒤이어 남자도 겉옷을 벗은 채 여자를 따라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여자 없이, 홀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어떤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3년이 지난 어느 날, 이 남성은 자신을 찾아온 아내를 보지 못한 채 어떤 여성을 따라가고, 그 뒤로 연락이 끊긴다.

.

위의 내용은 <가장 나쁜 일>의 극초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외도나 불륜, 뭐 이런 거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아내는 사라진 남편을 추적할수록 그 뒤에 심상치 않은 음모와 사건들이 엮여있는 것을 점차적으로 알게 된다. 소설의 중후반부가 전개될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성들이 발견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하면서 서사의 규모는 초반보다 훨씬 거대해져 간다. 그 과정이 긴박하고 스릴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정말 최적이지 않을까 싶다.

.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 힘들었다. 순수문학이나 고전문학들을 읽을 때에는 그저 소설이 전개하는 이야기를 독자로서 순순히 따라가면 되었는데, <가장 나쁜 일>을 읽을 때에는 결말이 대체 무엇일지, 이 사건에서 숨겨진 내막이 대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읽기 때문에 계속 전전긍긍하게 되고 읽는 내내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추리소설‘만’ 읽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읽었는지 지금은 전혀 알지 못하겠다. 

.

아무튼, 그러므로 작품 자체는 정말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할 있을 같다. 다만, 앞으로의 독서 생활에 있어서 당분간 추리 소설은 읽지 않을 같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진이 빠지는 경험을 했으므로이제는 추리소설을 놓아주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