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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평점 :
#도서협찬
문학에 대한 저의 취향은 매우 확고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 즉 허구적 상상력보다는 현실감이 물씬 느껴지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함윤이 소설가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는 저의 취향과 전적으로 상반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이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호자」와 「나쁜 물」,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천사들(가제)」 등 책을 읽는 동안 ‘이 소설들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덮고 나니 그런 질문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윤이가 만들어낸 ‘환상’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이었죠. 결국 환상적, 비현실적 소재를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지극한 현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는 점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통 판타지 소설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반면, 『자개장의 용도』는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거든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한 차례 만났던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자개장’은 주인공이 어디든 갈 수 있게 해주는 물건으로 등장하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아닙니다. 자개장을 활용하여 떠나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복귀할 때는 자개장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즉,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라는 점이에요. 떠남이 욕망이라면 돌아옴은 책임이라는 거죠. 이 작품은 그 점을 주제의식으로서 전면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구유로」 도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함께 걸그룹 아이돌을 준비하던 네 명의 여성 중 주인공이 탈퇴하겠다고 나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말만 들었을 때는 여러 여성들의 갈등이 소설의 전반을 구성할 것이라 예상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이 그려져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처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우정이 시작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곱 편의 수록작 중 유일하게 뭉클한 마음이 들었던 단편이기도 했고요. 앞서 언급한 ‘젊은작가상’을 비롯해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그리고 최근에 문학동네소설상까지! 화려한 수상이력을 가진 작가답게 평단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자개장의 용도』를 읽으며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출간될 함윤이 작가의 장편에 기대를 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