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치유와 자유의 경계에서 쓴 불온한 질병 서사
김도미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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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는 저자가 실제로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을 앓은 경험담이 녹아든 책이다. 환자로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주위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고 그것이 환자인 자신에게 어떤 기분으로 다가왔는지, 또 환자이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를 상세하게 적어냈다. 직접 환자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 감각할 수 없는 지점들을 구체적이면서도 연민 없이 써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는 대신 메신저나 화상통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일상이 재배열된다. 생존을 중심으로 매일의 구성이 바뀐 만큼, 혼자 끌어안거나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의 성질도 조금은 달라진다. 이 새로움마저 몽땅 재앙이라고 하기에는 삶이 그보다 깊다. (11p)

암 경험자에게도 그런 순간은 필요하다.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찌르르 넘어가는 순간, 퇴근 후 카우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회복을 뭉클하게 실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큰 병에 걸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일절 못하도록 막는 것이 온당할까. (40p)

감염 위험 때문에 가사노동을 직접 하면 안 된다는 병원 위생 관리 교육 내용은 지킬 수 없었다. 24시간 상주하는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버거웠지만 생활감이 필요했다. (97p)

지금 와서 보험이 있어 다행이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보험금을 받는 과정은 꽤 까다롭고 대체로 모욕적이었다. (241p)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투병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환자로서 직접 겪었던, 아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사회 보장 제도의 허점들을 낱낱이 고발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만큼이나 의료 보험 제도가 잘 짜여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한국의 의료 보험은 꽤 체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달랐다. 특히 ‘간병’ 등과 같은 일상적 돌봄에 대한 제도는 거의 공백에 가깝고, 제도적 지원을 받고자 하더라도 본인이 절대적 빈곤에 처해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한국 사회의 돌봄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이 책은 끊임없이 설파했고, 이에 나는 아픈 마음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 가족에게 매일 발생하는 가사와 육아를 지역사회 안에서 나누어 할 수 있었다면, 환자를 돌보는 일이 가족에게만 떠맡겨지지 않았더라면 사정은 달랐을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에게만, 그마저도 세세한 의심과 증명을 거쳐야만 적용되는 돌봄 제도가 아픈 사람에게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136p)

공공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분배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크게 확대한다고 한들, 약가 자체가 인하되지 않는 이상 면역항암제 치료를 시도하고자 하는 모든 환자에게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6p)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한 채 풀빵을 구워 팔며 어린 남매와 함께 시한부 인생을 살아냈던 고 최정미 씨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풀빵엄마>(2009)는 피 끓는 모정으로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지만, 사실 이 다큐멘터리가 폭로한 건 암 경험자에게 더 가혹한, 사회안전망이 부끄러운 수준으로 취약한 한국 사회다. (309p)

책을 읽으면서 (아직은) 환자가 아닌 내가, 한 개인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되뇌었고, (아직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를 못해 무력한 마음에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읽고, 깊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분들에 동의와 응원의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환자가 아닐지언정 우리 모두는 ‘잠재적 환자’인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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