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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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고 비참했던 정용준의 첫 소설집 『가나』와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느껴졌던 가장 최근의 단편집 『선릉산책』, 같은 작가가 쓴 것이 정말 맞을까 싶을 정도로 두 책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출간 순서만 보더라도 두 작품의 딱 중간에 있는 정용준의 두번째 단편집인 만큼, 그 두 작품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했다. 『가나』에서 『선릉산책』으로 가는 그 과정 중간에 쓰인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일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 수록된 소설들은 대부분 『가나』의 분위기처럼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표제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서는 부부싸움 중에 화를 이기지 못하고 엄마를 죽인 아빠를 둔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친척 가정으로 입양이 되었고 이후 성인으로 자랐을 때 간호조무사가 되어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그 병원에 환자로 그의 아버지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개들」이라는 작품의 배경은 개를 사육 및 도살하는 농장(도축장)이다. 그곳의 주인은 개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종업원 등의 인간들도 너무나 험하게 다룬다. 「이국의 소년」 역시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 주인공과 군대에서 총기 자살 시도를 한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좀처럼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겠는 암울함이 작품들의 주(主)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는, 작품 전반을 뒤덮고 있는 비참 속에서도 한줄기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부」라는 단편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으면서도 이 소설집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싶다. 「안부」는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군부대 측에서는 자살 사건으로 빠르게 종결짓고 마무리했지만, 어머니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러 개의 구타 및 폭행의 흔적들이 아들의 몸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6년이 넘는 시간을 바쳐서 주인공은 투쟁한다. 여러 곳에 나가 시위를 하고 판사와 대통령 등에게 편지를 쓰는 등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한다. 사람들은 사건을 점차 잊어가고 주위에서도 이제 그만 아들을 보내주라고 주인공을 말리지만, 그녀는 절대 물러날 수 없었다.

곧 사람들은 다 잊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 서운해하거나 화내면 힘들어져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아들을 믿으세요. (182p)

이 작품이 내게 너무나도 깊이 와닿았던 것은, 단순히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애(悲哀)만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는 않았다는 데에 있다. 만약 어머니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리고, 물러나버리면 나는 이 소설을 절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부」는 그렇지 않다. 「안부」의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한다.

내게 더는 안부를 묻지 말기를. 나는 아직 괜찮다. (184p)

결국 그녀는 이겨내지 않을까. 아들의 원통함을 풀어내고서 힘겹지만 후련하게 아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주인공의 의지와 함께 아주 약한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더욱 이 소설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부」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들에서도 미약하게나마 한 줄기의 빛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개들」의 결말도 주인공이 누구에게 이끌려 하게 되는 행동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며 끝을 맺는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겠다만, 작품 속에서 온갖 고생을 마다 않는 인물들이 이제는 자유를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고는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정용준 작가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역시나 정용준 작가님은 내게 ‘실망을 주지 않는 믿고 읽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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