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케이크」
솔직히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아쉬웠던 작품이 바로 「레몬케이크」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는데,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날카로운가’ 아니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많았는가’ 아니었다. 딱 하나 있었다. ‘주인공이 매력적인 인물인가’ 이 또한 아니었다. 특색 없이 너무도 무난한 인물이었다. ‘해피엔딩이나 구원의 서사인가’ 절대 아니었다. 물론 이 소설이 절대 ‘혹평’을 남길 만한 안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리 느낀 바가 크지 않아서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어차피 여러 편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에서 모든 소설이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런 소설 하나 쯤이야 눈감아줄 수 있다. (나 뭐 돼?)
「안녕이라 그랬어」
이 작품이 표제작이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안녕이라 그랬어」였다. 씁쓸하고도 뭉클한 여운이 일품이었고,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따뜻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 소설의 주제의식 또한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은미’와 그의 전남친 ‘헌수’, 그리고 은미의 화상영어 선생님 ‘로버트’까지. 앞서 언급했듯이 세 인물은 모두 성품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미와 헌수는 이미 이별하였고, 로버트와 은미의 수업도 결국 끝나게 된다. 어째서일까. 좋은 사람임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이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임을 알더라도 헤어져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헤어질 때, 헤어져야할 때 우리는 ‘안녕’이라 말할 것이다. ‘안녕’이라는 표현에는 단순한 인사말 의미 외에도,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라는 뜻도 있으니 말이다.
「빗방울처럼」
‘전세사기’라는 소재를 전면으로 끌어올린… 독자로서 읽는 내내 너무나도 마음이 무겁고 아팠던 소설이었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 중에서 읽는 게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힘들었다’는 거지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다. 작가님의 문체가 전세사기 당한 인물들의 불행과 비참함을 예리하게 그려내어 마치 내가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시 말해 과몰입이 되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이 별로였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그건 아니다, 라고 단언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소설의 결말, 즉 주제의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처럼」은 낙숫물 사이에 들리던 ‘해, 할 수 있어, 그럼 끝나’(281p)라는 목소리가 ‘안 돼, 하지 마, (스포일러 방지 위해 생략)’(293p)으로 바뀌며 끝난다. 이는 결국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삶을 끝내려는 주인공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살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너무나도 뭉클했다. 그런 마무리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았을 것 같으나, 이런 여운을 주는 결말이라면… 그 무엇보다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