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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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파티」

2022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처음 접했던 작품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별 감흥 없이 읽고 넘겼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니 내가 그때 왜 그리 큰 감동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한 장소에서 계속 대화를 해대니, 빡-집중 하지 않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놓치기 쉽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엔 독서모임을 준비하며 개-빡집중 하며 읽었고, 다행히 여러 생각할 지점들과 전에는 얻지 못한 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결말’이었다. ‘묘한 만족감’ 내지는 ‘승리감’(41p)을 느끼던 ‘오대표’라는 인물에게 주인공이 오묘하고도 적확한 복수를 한 것이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오대표가 ‘여왕벌’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자 자신의 언행에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처럼) 동조하지 않으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인물,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보였던 주인공의 ‘사랑에 빠진 사람’(43p)을 연기한 것은 여왕벌의 날개를 꺾는 듯한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나는 얼마간의 통쾌함과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숲속 작은 집」

이 소설은 초반이 무척 흥미로웠다. 여행을 떠나 외진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인데,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방에 있는 물건들이 묘하게 위치가 달라지는 등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무언가를 훔쳐간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되겠는데, 없어진 물건은 없고 오히려 ‘왠지 의도한 것처럼’(62p) 느껴져 더욱 호기심이 자극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소 뻔한 이유로 밝혀진다.) 아무튼 앞선 「홈파티」와는 다르게 서사 진행 자체가 대단히 흥미롭고 재밌게 읽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일단 인물들에게 공감 내지는 감정이입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이들의 생각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던 것이다. 먼저 ‘메이드’라는 단어를 두고 두 부부가 약간의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직원’이라는 쉽고 친절한 단어를 왜 생각하지 못하고 싸우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작가가 의도하여 일부러 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넣으려고 한 걸까 싶은데,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부모님이 돈을 보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 문자를 보고 주인공은 뿌듯함이 아닌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을 느끼는데… 이 무슨 배은망덕인가??

「좋은 이웃」

가장 현실적으로 읽혔던 소설이다.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적인 민낯을 낱낱이 고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신형철 평론가가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다고 말한 이유를 납득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좋은 이웃」에서는 부동산 대란 사태를 맞은 일반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설 속 주인공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할 때 대출을 낀 매매가 아닌 ‘전세’로 했고, 이를 지금에 와서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가’를 가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서는 열등감,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이 좋았던 점도 바로 이런 데에 있다. 현실의 민낯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해 어떤 인물의 선/악을 구분케 하지 않고 강점과 약점을 모두 묘사하여 이것을 주제의식으로 끌어낸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좋은 이웃’인 것도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주제의식이 문학의 근본적 탐구 주제인 ‘연대’와도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마음 깊이 공감하고 감탄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142p)

「이물감」

김애란 작가는 못 쓰는 게 뭘까? 「숲속 작은 집」의 도입부에서는 스릴러 소설만의 음산한 분위기를 구현해내더니 「이물감」에서는 찌질한 중년 남성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 묘사를 선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 ‘기태’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게 여러 가지의 찌질한 행보를 보인다. 전부인의 SNS 계정을 염탐한다던가, 전부인의 썸남으로 추정되는 훈훈한 남성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냅다 남기고 오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던가, 부하 직원들에게 쓴소리 격인 충고를 하다가 되려 역공당하고 후회한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런 주인공의 행동을 욕하기만 하기엔, 우리도 남몰래 어디선가 해봄직한, 아주 ‘현실적인 찌질함’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을 보며 혀를 쯧쯧 차면서도 왠지 모르게 미운정이 간다.

그러나 만일 기태의 가슴에 어떤 그리움이 남았다면 그건 희주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한 시절들 때문이었다. (155p)

「레몬케이크」

솔직히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아쉬웠던 작품이 바로 「레몬케이크」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는데,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날카로운가’ 아니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많았는가’ 아니었다. 딱 하나 있었다. ‘주인공이 매력적인 인물인가’ 이 또한 아니었다. 특색 없이 너무도 무난한 인물이었다. ‘해피엔딩이나 구원의 서사인가’ 절대 아니었다. 물론 이 소설이 절대 ‘혹평’을 남길 만한 안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리 느낀 바가 크지 않아서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어차피 여러 편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에서 모든 소설이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런 소설 하나 쯤이야 눈감아줄 수 있다. (나 뭐 돼?)

「안녕이라 그랬어」

이 작품이 표제작이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안녕이라 그랬어」였다. 씁쓸하고도 뭉클한 여운이 일품이었고,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따뜻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 소설의 주제의식 또한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은미’와 그의 전남친 ‘헌수’, 그리고 은미의 화상영어 선생님 ‘로버트’까지. 앞서 언급했듯이 세 인물은 모두 성품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미와 헌수는 이미 이별하였고, 로버트와 은미의 수업도 결국 끝나게 된다. 어째서일까. 좋은 사람임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이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임을 알더라도 헤어져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헤어질 때, 헤어져야할 때 우리는 ‘안녕’이라 말할 것이다. ‘안녕’이라는 표현에는 단순한 인사말 의미 외에도,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라는 뜻도 있으니 말이다.

「빗방울처럼」

‘전세사기’라는 소재를 전면으로 끌어올린… 독자로서 읽는 내내 너무나도 마음이 무겁고 아팠던 소설이었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 중에서 읽는 게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힘들었다’는 거지 ‘어려웠다’는 것이 아니다. 작가님의 문체가 전세사기 당한 인물들의 불행과 비참함을 예리하게 그려내어 마치 내가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시 말해 과몰입이 되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이 별로였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그건 아니다, 라고 단언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소설의 결말, 즉 주제의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처럼」은 낙숫물 사이에 들리던 ‘해, 할 수 있어, 그럼 끝나’(281p)라는 목소리가 ‘안 돼, 하지 마, (스포일러 방지 위해 생략)’(293p)으로 바뀌며 끝난다. 이는 결국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삶을 끝내려는 주인공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살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너무나도 뭉클했다. 그런 마무리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았을 것 같으나, 이런 여운을 주는 결말이라면… 그 무엇보다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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