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문학을 즐겨 읽어오면서, 그리고 같은 몇 년 동안 북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독후감을 작성해오면서, 내게는 문학에 대한 두 가지 명제가 머릿속에 자리했다.
1) 나는 SF와 판타지 장르랑 잘 맞지 않는다.
2) 나는 단편 분량보다 장편 분량을 더 선호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SF 단편’은 어떻겠는가. 당연하게도 나는 SF 단편집을 단 한번도 만족스럽게 읽은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테드창이나 켄 리우의 소설집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김초엽, 천선란의 단편집도 모두 중도 하차했다. 상상력이 부족한 편인 나로서는 완전히 비일상적인 SF(혹은 판타지)의 세계관에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고, 그런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단편 분량의 SF 소설들은 즐겁게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내게, 올해 처음으로 별 다섯개를 준 소설이자, 난생 처음으로 별 다섯개를 준 SF 단편집이 생겼다. 바로 김보영 작가님의 『고래눈이 내리다』이다. 단편집의 특성상 수록된 모든 단편이 좋은 경우는 너무나도 극히 드물다. 일반적인 순수문학을 읽을 때에도 모든 단편이 좋았던 단편집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나는 건… 김병운 작가님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정도?) 근데 『고래눈이 내리다』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것도 SF 장르로 말이다.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을 비좁은 이곳에다가 소개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일 것 같고, 그렇다고 해도 이 아홉 편의 훌륭한 소설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외하기도 너무나 힘들다. 보통 단편집의 리뷰를 쓸 때에는 좋았던 몇 편의 소설들에 대해서만 쓰게 되는 반면, 『고래눈이 내리다』는 ‘좋았다’는 감상이 기본으로 깔려있기에 ‘무엇이 더 좋았는가’를 따져야 해서 무척이나 힘든 것이다. 다만 수록된 모든 단편들을 관통하는 몇 개의 주제의식이 있다. 그건 바로 기후위기나 인간 존엄성 등과 같은 것이고, 그에 대한 저자의 사유가 너무나도 깊이 와닿았으므로 구구절절 공감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아홉 편의 소설 중 딱 하나만 골라보라면, 나는 「까마귀가 날아들다」를 꼽을 것이다. 작년 12월 3일 말도 안되는 일을 현실로 겪어서 그런지 소설 속 내용을 더더욱 절실히 통감했던 것 같다. 워낙 짧은 단편이기에 내용 소개는 하지 않겠지만, 작품 속의 한 문장 정도만 남기고 싶다. (제발…. 이 책 읽지 않은 사람 없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