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석방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아동 학대 가해자들이 연이어 실종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작가 ‘유희진’은 지난번 아동학대를 다룬 특집 ‘토기장이와 그릇’에 이어 ‘끊기지 않는 고리’의 방영을 위해 취재를 하던 중 해당 사건을 알아차리고 이를 추적해가는 구조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후원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뭔가 의뭉스러운 ‘장석기’와 그의 후원을 받고 자란 아이 ‘박기정’, 대놓고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 분노를 드러내는 ‘김민수’ 등 수상한 인물들을 여럿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의 주제의식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교화니, 갱생이니, 수형자의 인권이니, 사회적 합의니, 다 피해자는 고려하지 않은 방안일 뿐이죠. 제일 좋고 확실한 건 범죄자를 교도소가 아닌 피해자에게 던져주는 거예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게 가장 확실하죠. 허나 그럴 수는 없죠. 지금은 현대고 우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니까. 자경단을 옹호할 수는 없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아볼 것 같네요.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심판하는 자와 심판받는 자 양쪽의 이유를 다 살펴보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겠죠. 사건의 이면을 고려하지 않고 행위의 동기를 살피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일들은 다 괴상하거나 뻔한 사건처럼 보일 테니까.” (152p)

위 문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자경단’과 ‘행위의 동기’. 만약 자경단이 실제로 조직되고 활동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혹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대신 복수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는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 법이 모든 것을 보호해주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두번째 키워드, 법은 ‘행위의 동기’를 아주 중요하고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범죄는 ‘학대’에서 그친 경우 보통 형량이 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살해’로 이어진 경우에는 20년 이상으로 훌쩍 뛴다. 그러나 아동학대로 인해 실제로 아이가 죽는다 하더라도, 법정에서 그 가해 부모가 ‘죽을 줄은 몰랐어요’라며 엉엉 울어댄다면 법원은 아동 살해 행위의 대해 ‘고의’가 아닌 ‘과실’로 판단하여 형량을 낮게 내린다. 다시 말해 ‘고의성’이라는 행위의 동기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참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므로 고의가 [있었다/없었다]로 주장이 갈린다면 고의가 없었음이 아닌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학대 사건에서 낮은 형량 혹은 가석방 처분을 받는 가해자들이 정말 많은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분노 또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서 복수하겠다는 ‘자경단’은 어떤가. 이를 옹호할 수 있는가? 이들의 행위의 동기는, 마냥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행위가 속시원하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겠으나, 그들의 마음 또한 일개 범죄자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를 절대 옹호할 순 없을 것 같다.

마치 독서모임으로 이 책을 다루면 열띤 토론이 벌어질 것 같은 정용준 작가의 신작 『너에게 묻는다』는, 흥미진진한 전개 속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다른 컨텐츠들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흔하디 흔한 자경단 이야기의 또 한 가지 버전을 접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올해 처음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은 장편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