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단13기
혹시 ‘에세이’라고 불리는 산문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가. 인스타 피드를 보면 에세이 리뷰들을 적지 않게 보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그렇게 즐겨 읽지는 않는다. 이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기인한 일종의 깐깐함인데… 뭐랄까, 나는 에세이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인 동시에 ‘아무나’ 잘쓰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평소 일상을 살고 있는 독자에게 소설의 비일상적인 세계관과 소재 등은 얼마간의 감탄과 쾌감을 선사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작가가 직접 겪은 ‘현실’ 차원의 경험담이 적혀있거나 작가의 생각 및 주장이 보다 직접적인 언어로 드러나있다. 그래서 소설보다 ‘참신’하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기가 정말 어렵다고, 그래서 잘 쓰기 정말 힘든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이유를 구차하게 구구절절 설명해보았다. 그래도 에세이를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궁금할 때는 그 사람의 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산문을 찾아 읽는 편이고(하루키, 신형철 등), 또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필요로 할 때는 그 ‘소재’를 깊이 다룬 산문을 탐독하기도 한다(나쁜 책, 아무튼 시리즈 등). 그렇게 이번에 만난 정용준의 산문 <밑줄과 생각>은… 너무나도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
정용준 작가의 소설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와 <유령>, <선릉 산책> 이렇게 세 권을 읽어보았고, 그에 대해 내가 느낀 바로는 ‘다양한 ‘아픔’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작가다’였다. 쉽게 말해, 무척이나 좋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정용준’이라는 사람이 더 궁금하게 되어 그의 문학론 <소설 만세>까지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 역시도 너무나 좋았었다. 단순히 문학에 대한 생각만을 넘어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나와 비슷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아서 감명 깊이 읽었다.
그래도 이전 산문집 <소설 만세>가 ‘문학’을 중심 주제로 두고 넓게 뻗어나가는 저자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었다면, 이번에 읽은 <밑줄과 생각>은 보다 더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인생에 대한 정용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작보다 조금은 더 냉정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쓰여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조가 더 단단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기존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문체였다면 뭔가 어정쩡하다고도 생각되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보다 더 결연하게 느껴진달까?
이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는 조언들도 너무나 직관적으로 와닿았고, 그럼에도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 또한 느껴져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살면서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플래그잇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와닿는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다. 나의 감상은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어서 빨리 밑줄 그은 정용준의 문장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좋은 산문집을 찾는다면, 거두절미하고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