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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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2024년 올해의 책으로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을 꼽았었다. 어딘가 살짝 뒤틀린 관계의 인물들에게서 내 모습이 언뜻 비쳐 보여 뜻하지 않은 공감과 위로를 물씬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읽은 <영원에 빚을 져서> 역시 그러한 관계성이 설정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중편’으로 길어진 분량만큼이나 작품에 담긴 메세지와 여운은 한층 더 깊고 짙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positive). 왜냐하면 소설 속 인물들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를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의 무겁고도 날카로운 담론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었다.


<영원에 빚을 져서>에는 세 명의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동’,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석’, ‘혜란’. 소설은 동이 혜란에게서 석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사실 석은 두 사람과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껄끄럽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세 사람은 이전에 대학생 시절 캄보디아로 교육 봉사를 나가게 되며 가까워졌으나, 어떤 일을 계기로 사이가 점차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석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로 다시 가는 현재 시점과, 이전에 캄보디아에서 봉사를 하는 동안 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되짚는 과거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이들이 캄보디아에서 봉사하고 있었을 때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날 이후로 그녀들의 일상과 관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날 선 상태로 서로를 대했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된 데에 정확한 맥락과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순 없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속했던 세계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33p)


석은 두 사람과 달리 그 문제에 조금 더 직접적으로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몇 년이 지나 또다시 벌어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석이는 ‘마치 제 일인 것마냥 고통스러워’(63p)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94p)이었다. 이런 점으로 말미암아 석과 두 사람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결국 나와 혜란의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석이의 마음과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려고 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이해하는 것과 가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65p)


이들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말’이었다. 너무도 가볍게 내뱉고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말’. 석이 캄보디아의 한 남학생 ‘삐썻’과 약간의 썸(?)을 타는 듯한 기류가 느껴지자, 다른 두 사람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때마침 석과 삐썻이 밤중에 외출을 감행하자 남은 두 사람은 이들을 두고 함부로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는데… (스포일러 방지)


비뚤어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운동장을 돌며 나눴던 대화들…… 게네 아마 잔 것 같아. 그건 좀 아니지 않니?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믿고 함부로 판단하던 나날들이었다. (106p)


소설 속 주인공에게서 나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실제로 나 또한 철없던 시절 다른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언행을 일삼았던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고 인연이 끊겨버린 경험이 있었다. 그때에도 속으로 반성을 많이 했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지금까지도 아주 조심히 지켜오고 있는 중이다. 그 경험이, 그 아프고 쓰라리고 시린 그때의 기억이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으며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반성하는 시간을, 그리고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기억은 집요하게 파고들수록 쪼개져 나를 아프게 했’지만(70p), 그럼에도 파고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없으니까. 잊어서는 안되니까. 


내가 가지고 있던 내밀한 경험들이 예소연의 문장으로 다시금 되살아나 읽힐 때 독자로서 받는 위로와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출간되는 예소연의 모든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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