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을 기준으로 하루키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네번째, 그중에서도 에세이 한 권을 제외하면 소설만으로는 세번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루키 찐팬이라 할 수 없고, 하루키에 대해서 많은 걸 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조금은 알 수 있는 하루키 소설만의 특징이 있긴 하였다.
지금껏 읽은 하루키 소설들에는 모두, 어딘가 불행하고 방황하고 절망과 허무의 늪에 빠져있는 청년 주인공들이 등장하였다. 고등학생 때 읽은 <노르웨이의 숲>, 올해 8월 대만 여행 비행기 안에서 읽은 <스푸트니크의 연인>, 너무 두꺼워 읽다 지쳐 잠시 덮어둔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까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허무와 방황이 공감되지 않으면 그저 ‘중2병’처럼 보여 도무지 이들의 행동과 심리에 몰입이 되지 않았으나(노르웨이의 숲), 그것이 조금이라도 이해나 납득이 된다면 방황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스푸트니크의 연인).
이번에 읽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도 그런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전 하루키 독서와는 사뭇 달랐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쓰쿠루의 처지에 ‘조금이라도 공감’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동감’할 수 있어서,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행동들을 보며 나 또한 너무도 사무치는 슬픔을 온전히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