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트리플 28
김남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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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은 딱 일 년 치만 복수를 하겠다고 했다. 보상금이라고 생각하고, 일 년, 그러니까 열두 달 동안 달마다, 많이도 아니고 딱 백만 원씩만 보내라고. 그러면 딱 열두 달 뒤에 사라져주겠다고. 안 그러면 계속 나타나서 괴롭힐 것이라고. 현철은 자신의 조건을 말하면서도 ‘많이도 아니고 딱 백만 원’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깟 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22~23p)


작가를 꿈꾸고 있는 나로서 한 가지 쓰고 싶은 소재가 하나 있다. 바로 ‘복수극’이다. 복수하는 과정에서 ‘통쾌’한 맛을 선사하고 싶은 느낌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내가 정말로 복수극을 쓰고 싶은 이유는 ‘복수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서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완벽한,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설계된 복수극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쓰고 싶은 복수란, 바로 이 작품집의 표제작 <파주>에 나오는 것이다.

군 폭력에 시달리던 ‘현철’은 가해자 ‘정호’ 앞에 나타나 위와 같은 매우 시시한 복수가 시작될 것임을 선언한다. 만약 현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정호가 근무하는 곳에 그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모조리 다 소문낼 거라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끝까지 그가 한 짓을 모두 폭로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정호는 ‘다음에 만나서 술 사주고 미안하다고 풀어주면’ 된다며 같잖게 이를 여기지만, 곧 그러지 못하게 된다. 현철이 그림자처럼 매우 시시하지만서도 또 너무도 끈질기게 정호 곁을 맴돌면서, 결국 정호는 현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현철의 태도, 너무도 시시하고 하찮아서 별볼일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더 처연하고 절박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서, 독자로서도 너무 그 마음이 절감되는 듯하였다. 현실에서 <더 글로리>의 문동은 같은 복수는 없다. 이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통쾌하다. 그러나 <파주>는 정말 극한의 현실적인 복수를 선보인다. 만약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면,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만 한다면, 정말 <파주> 속의 현철의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시시하지만 끈질기게, 하찮지만 집요하게 말이다.

표제작 <파주>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어 이에 대한 리뷰가 길어졌지만, 같이 수록된 <그런 사람>과 <보통의 경우>도 아주 씁쓸하고 처절한 현실적 인간의 고뇌를 그리고 있어서 좋았다. 직장 내 불륜과 폭력, 강박적인 가려움으로 표상된 현실적인 스트레스가 너무도 직관적으로 느껴져 읽다보면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그 감각이 좋았던 김남숙 작가의 <파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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