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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단편보다 장편을 훨씬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단편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좋은 단편 하나를 만나더라도 같이 수록된 다른 단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꽤 있어서, 결과적으로 단편집 전체에 대한 인상이 좋은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믿고 읽는 단편 작가’의 리스트가 있다. 한강, 최은영, 김병운, 앤드루 포터. 이 작가들의 단편집은 온전하게 신뢰할 수 있다. 적게는 여섯 편, 많게는 열 편 정도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에 그 수록된 소설들이 십중팔구 이상으로 좋은 경우는 거의 드문데, 이 작가들은 그 어려운 것을 해낸 분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목록에 ‘예소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추가할 것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예소연이 쓴 작품들의 특징은 미묘하게 뒤틀린 인물들의 관계에서 비롯한 마음, 그 심리를 기가 막힐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심리 묘사를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인물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 또한 서사의 시발점으로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소연은 그 부분을 아주 꼼꼼하고 충실하게 해내었다.
[아주 사소한 시절]-[우리는 계절마다]-[그 얼굴을 마주하고]의 3부작으로 내용이 이어지는 단편들은 주인공 ‘희조’와 그녀의 친구 ‘미정’ 간의 우정이 묘하게 뒤틀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때까지, 두 인물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독자로서 지켜보는 재미는 정말 탁월했다. 현실에서 전혀 그럴 수 없는, 두 명의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이지 않을까.
[팜]과 [그 개의 혁명], 두 단편도 특히나 좋았다. 물론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부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딸을 사랑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조금은 서투른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또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와 우리 아빠는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부녀 관계’ 못지 않게 ‘부자 관계’ 또한 묘하게 어설프고 어색한 느낌이 있으므로 나는 두 소설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아빠를 다른 시각으로, 다른 마음가짐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또한 든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은 아빠가 미웠던 적도 있지만, 아빠는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애틋한 감상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던 <사랑과 결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