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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7월
평점 :
수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 작가인 것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하루키지만, 어쩐지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노르웨이의 숲> 한 권만을 읽었을 뿐이고, 이 작품은 그가 지금까지 써온 모든 작품들과는 결을 달리 한다는 이야기 또한 숱하게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완독했던 유일한 <노르웨이의 숲>이 너무도 나의 감성과 맞지 않아 그의 작품을 계속해서 피해왔더랬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이 작품을 집어 들었고… 드디어, 사람들이 말하는 하루키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게 된 것 같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노르웨이의 숲>과 마찬가지로 하루키만의 독보적인 감성이 가득 담긴 연애소설이다. 그래서일까, 두 작품 사이에 유사한 설정 및 분위기가 여럿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보통’과는 거리가 조금 먼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 그 여성을 몹시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는 점 등등.
<노르웨이의 숲>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에 온전히 공감하고 몰입하여 읽을 수는 없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실종된 여자 주인공을 찾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하는 모습과 그녀의 흔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심리를 하루키는 그만의 문체로 차분하고 섬세하게 묘사해나갔다. 그 점을, <노르웨이의 숲>을 읽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그 부분을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읽으면서는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그때 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해요. 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볼 수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188p)
단순히 연애 심리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 철학적인 문장들 또한 좋았다. 왜 다들 하루키가 좋다고 하는지,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전에는 별로였던 <노르웨이의 숲>도 다시 읽어보고 싶고, 그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작품 같은 작가를 두고도 감상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건, 그만큼 나 또한 많이 달라졌음을,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것으로 받아들이련다. 오늘은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