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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평점 :
이번 학기에 듣는 [장르소설입문] 수업에서 크게 와닿았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하나 있는데, 때마침 읽은 이번 작품과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그 내용을 설명하고 싶다. 수업은 합평을 주고받는 차례였고, 어떤 학생이 정치 풍자극의 내용을 담은 작품을 써왔다. 그때 그 작품을 보며 교수님께서 코미디 장르에 대해 설명하신 내용이, ‘코미디는 위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위’란 상류층 내지는 고위직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코미디의 대상이 권력을 쥐고 있는 상위 계층이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을 느끼면서도 그 스릴에서 유발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코미디가 아래를 향한다면? 그것은 그냥 조롱하고 비아냥대고 깔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는 아주 높은 곳을 정확하게 찌르는 코미디극이다. 이 작품이 풍자하는 대상은 바로 미국 전직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다. 닉슨 대통령은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대통령 직을 사임하게 된, 역사적으로 전례없는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요즘 무슨 사건이나 논란이 터지면 ‘~~게이트’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마나 그 영향이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개소리’ 만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아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트리키 대통령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그곳에서 선정성 논란이 불거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코치들(정치 코치, 법률 코치, 마음 코치 등등)의 대화 또한 가관이고, 그렇게 토론을 마친 후 연설을 (다시금 개소리로) 하는 대통령의 모습… 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닉슨 대통령을 대담하게 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이 만드는 감정은 불편함보다는 스릴 넘치는 긴장감에 더 가깝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코미디극의 방향성이 너무도 적확하게 설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라니… 그보다 더한 권력이 있을까.) 그리고 이는 큰 논란을 일으켰던 ‘피식대학’과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다. 피식대학의 여러 논란 중 하나가 바로 ‘경상북도 영양군’을 비하했다는 것일 텐데, 이 역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조롱하고 깔보는 듯한 아래 시선의 코미디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뒷표지에 나와있는 카피 문구 “무능한 지도자를 향한 필립 로스의 문학적 테러”라는 말에 격하게 동감한다. 정말 ‘테러’ 수준으로 지도자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미국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ㅋ…(읍읍) 암튼 재밌으니 관심 있으면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