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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ㅣ Philos 시리즈 28
게리 거스틀 지음, 홍기빈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평점 :
정말 흥미롭게 읽은 미국의 정치 역사서다. 1929년의 대공황을 기점으로 출현한 ‘뉴딜 질서’의 흥망성쇠와 그에 이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정치 계보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단지 미국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세를 통합적으로 관철하고 있으므로 보다 깊은 이해와 사유가 가능했다.
뉴딜 질서는 자본주의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구축하여 경제 시스템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비롯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반발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 방식의 자유방임 경제 체제가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인해 적절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뒤 곧바로 미국 정권을 잡게 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케인스 주의’ 경제학(이론)을 받아들인다. 케인스 경제이론은 경기 순환이 바닥에 있을 동안에는 정부 수입을 초과하는 정부지출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재정적자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명제를 공리로 삼고 있다. 도로, 교량, 공항, 댐, 학교, 도서관 등 수많은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 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는 강력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조건으로 충족되어야 했고, 그렇게 루스벨트와 뉴딜주의자들은 중앙집권 국가의 힘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대공황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게 만든 뉴딜 질서에도 위기는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법이다. 바로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가 불황인 속에서도 물가가 끊임없이 오르는 현상을 뜻하며,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안좋은 점만을 합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야기한 요인으로는 오일 쇼크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 사회적 요인들이 있었다. 이런 위기를 여전히 뉴딜 질서로만은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새롭게 들어선 이론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근간은 성장, 혁신, 자유를 가두어 놓는 정부의 규제와 통제에서 시장의 힘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탈규제’를 원칙으로 천명하며, 정부가 시장의 작동에 더이상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완전히 규제를 하지 않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방임주의와는 다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그보다는 국가개입을 더 필요로 삼고 있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를 줄이고자 하는 데에는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으므로 자유주의의 결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신’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둘을 구분짓고 있다.
분량이 넘쳐나서 더이상 글을 쓰지 못해 안타깝다. 책에서는 뉴딜 질서보다도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보다 깊이 다루고 있으니 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더불어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단순히 특정 정치 체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가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다룬다던지 미국의 양당 체계에서 어떤 정당이 승기를 잡아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훌륭한 사회과학 서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