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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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서포터즈

이장욱 작가는 소설가인 동시에 시인이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어쩐지 소설 보다는 산문시를 읽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란 힘들다. 명확한 사건 내지는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인물들이 그 떠난 사람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회상과 묘사가 전부이다. 이러한 내용에 ‘시인’으로서의 시적 표현들이 들어있으니, 더더욱 소설이 아닌 산문시로 읽히는 까닭인 듯하다.

모수의 유품은 많지 않았다. 뭐든 간소한 사람이었다. 인생에 많은 물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많은 감정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몸이 큰 편이어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할 텐데도 어쩐지 삶 자체가 소규모였다.

80p

소설 속 주인공 ‘연’은 남편 ‘모수’를 잃은 뒤 그를 추모하고 회상한다. 그리워하긴 하는 걸까? 슬프기는 한걸까? 모수를 떠올리는 연의 태도는 시종일관 담담하기 때문에 애절하다거나 처연하다는 감정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그저 모수를 생각할 뿐이다. 아니, 중얼거릴 뿐이다. 어쩌면 무채색 같은 연의 담담한 태도가 모수를 추모하는 그녀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예상하던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덜 받는다. 예상을 성실하게 하면 어떤 일이든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런 건 모수가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예상을 아무리 해도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81p

그리고 또다른 인물 ‘천’이 있다. 이 인물은 연극 배우로 얼마 전 연인이었던 아나운서 ‘한나’와 이별을 겪었다. 한나는 천에게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며 그를 떠나버렸고, 천은 그 말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독자들은 천이 사유하는 흐름을 따라가며 그의 내면으로 유유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 또한 보통의 소설에서는 찾기 힘든 감각이다.

천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혼자 있는 시간이 충분한데, 한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일 텐데, 인간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천은 침울한 생각에 잠겼다.

98p

서사성과는 거리가 있는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다 보면, 그 담담한 문체로부터 비롯되는 여운과 감동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소설보다는 시를 읽을 때 느끼곤 하는 감각인데, 이 작품에서 그러한 감상을 느끼니 색다르고 신선한 재미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중에 널리고 널린 가볍고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가끔은 담담하고 깊이 있는 여운에 빠져드는 것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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