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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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살던 부부 ‘루보’와 ‘세브린’의 관계는 어느 한순간에 나락으로 치닫는다. 바로 아내 세브린이 그녀를 입양했던 ‘그랭모랭 법원장’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 루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성폭행은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루보는 이성을 잃은 채 그랭모랭 법원장을 죽이고자 하고, 세브린과 합세하여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 끔찍한 고통, 그의 가슴 한복판에 찍힌 낙인, 그것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 그 작자 사이에 있었던 일인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방도가 없다는 무력감에 치를 떨 만큼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41p)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의 살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자크’라는 기관사다. 시체가 발견된 후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부부는 자크가 본인들의 살해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보는 세브린을 시켜 자크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이 범인이 아님을 확신시키고자 한다. 

🗣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는 범인이 아니에요.” 그녀가 이 말을 한 것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녀 자신이 결백해 보일 거라는 점을 그에게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217p)



하지만 루보의 뜻대로 자크가 세브린의 말을 들을까? 당연히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으나 이야기는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바로 자크와 세브린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예전에 올린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작품에서 다룬 내용을 조금 차용해보자면, 과연 살인을 공모한 이들이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서로를 믿으며 끝까지 의지할 수 있을까? 루보와 세브린 역시 전혀 그러지 못하였다. 그랭모랭 법원장을 죽임으로써 이들 부부의 갈등의 원천은 제거되었을지 몰라도, 동시에 이들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듯 영원히 멀어지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세브린이 자크와 다시금 불륜을 저지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 그는 자신의 수염에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아침이었다면 그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원초적인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몸에 전율은 거의 일지 않고 회복기의 나른함이 느껴지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이제는 확실해진 그 생각이 그녀를 다르게, 대단하게, 예외적으로 보이게 한 것이다. (중략) 그러자 그때부터 그녀가 성녀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불러일으킨 두려운 욕망도 잊게 하는,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219p)

🗣 그녀가 자크에게 반한 것은, 그녀가 그의 손을 살그머니 쥐었을 때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함부로 더듬지 않는 것을 보고 실감했던 그의 그 부드러움, 그 온순함 때문이었다. (257p)

🗣 그 정신나간 무모함에 그들 둘 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은 본분을 망각했다. (271p)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막장’이라 일컬으며 비난의 말을 쏟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막장’이라는 것은 수많은 우연의 일치 등 개연성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전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인간 짐승>은 절대 ‘막장’이 아니다. 자극적인 사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 사이사이의 논리적인 개연성을 앞세워 독자들을 확고히 납득시키니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한줄평에서 <죄와벌>을 언급했던 만큼, 이 작품 역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풍부하고 깊이 있다. 읽는 동안 너무 너무 재밌었고 짜릿했고 불쾌함에 치를 떨어도 그 또한 쾌감을 주었다. 앞으로의 에밀 졸라 작품 도장깨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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