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최선
문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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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잠잠해졌다고 생각했던 ‘젠더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여성 알바생이 숏컷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모 유튜브 채널에서 출연자들이 말한 ‘유모차’를 ‘유아차’라고 표기해 자막을 달았다는 이유로 다수의 구독자가 이탈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세상사에 관심 없는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정도인데, 기사화되지 않는 일상에서 혹은 수면 아래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얼마나 많은 젠더 갈등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하면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다.



독후감이나 적을 것이지 왜 갑자기 사회적인 이슈를 논하느냐 묻는다면, 한줄평에도 적었듯 이 책에 대한 리뷰의 내용이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문단문학 계열 소설들에는 ‘페미니즘’ 등 여성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고 이번에 읽은 문진영의 <최소한의 최선> 또한 역시 그렇다. 다만 <최소한의 최선>은 다른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여성서사를 담은 작품들을 읽으며 느꼈던 아쉬운 부분들을 완전히 해소해주기도 하여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페미니즘’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전에 검색해보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로 나오고, 나무위키에는 ‘남성중심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여성의 권익 신장을 논하는 사회적 운동 및 사상’으로 나온다. 이러나 저러나 여성의 권리 향상 및 양성평등이 목표라는 점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나 역시 여성의 권리 향상이 필요하고 양성평등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남녀 모두가 사회적으로 연대하여 노력하는 것이 너무도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사회를 보면 여성과 남성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이 여간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인터넷과 뉴스를 보다보면 어쩐지 목표와 수단이 대치된 모습이다. 양성 평등을 위한 투쟁이 아닌, 본인과 다른 성을 비난하기 위한 무의미한 싸움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문학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성 서사’를 담은 작품들을 읽노라면 마치 남성을 그저 ‘적’으로만 보는 듯한 기분이 자주 느껴지곤 한다. 여성과 남성이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싸움을 거는 듯한 소설은… 내겐 그저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의 최선>은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여성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바로 ‘남성’에 대한 고발이 아닌 (결혼 등의) ‘사회 풍습’에 대한 고찰이 담긴 소설 말이다. 수록된 [내 할머니의 모든 것]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 할아버지는 성실했으며 폭력적이지 않았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는 남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109-110p)

이 소설은 주인공의 엄마가 어렸을 적에 자신을 떠난 할머니와 재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혼사유를 누구의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저 할머니가 결혼 제도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으로 묘사되며, 오히려 할아버지를 떠난 할머니를 욕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듯하다. 



다른 작품 [네버랜드에서]에는 ‘결혼 제도’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고찰하는 문장이 나온다.

🗣 아니, 그냥 더는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아졌달까. 구멍이야 있든 말든, 신경쓰고 싶지 않아졌어. 네 형부를 만나서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됐고, 지금은 편해. (중략) 근데 너는 나랑 다르잖아.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하려는 거면, 희욱이랑 살면서 그게 가능할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191p)

이 소설 역시도 주인공 언니의 남편인 형부나 주인공의 예비 남편인 희욱을 악한 남성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결혼’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겼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이 다루고 있는 서사들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일상적으로 느껴졌다. 훨씬 더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이 나의 가치관과 너무도 잘 부합한 덕에 지금까지 읽지 않은 문진영의 글과 앞으로 보게 될 문진영의 글 모두 기대감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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