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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도시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4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평점 :
총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소설집이지만, 이 소설집에 대한 감상은 각 소설 별로 적는 것보다 소설집 하나를 통으로로 묶어서 정리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일곱 편의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한줄평에서도 말했듯, 끝도 없이 어둡고 절망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리고, 일주일>에서는 우발적인 성관계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직장인 여성이, <기념사진>이라는 작품에서는 시력을 잃어가는 여배우와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전과자 남자가 등장한다. 어후… 단순히 인물들의 상황을 정리했을 뿐인데도 그 절망을 감당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이기 때문에 각 작품이 서사를 갖추어 전개되기 보다는 그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나열하거나 장면을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이런 칠흑같은 어두움을 지닌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취향과 맞지 않다. 이런 류의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최적인 방법으로 정용준의 에세이 <소설 만세>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 (…) 죽고 싶었다. 이렇게 소설은 끝나지만 인물에게는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고려하지 않고 한순간의 감정과 감각에만 몰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소설 만세>, 87-88p)
작가와 독자들은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소설 속 인물은 소설이 끝난 후에도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소설 속에서 온갖 불행을 안기기만 하고 아무런 꿈도 희망도 주지 않는 소설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불행만을 담은 소설을 평소의 나는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어쩐지 그렇게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다. 왜일까. 물론 나의 인생책 <단순한 진심>을 쓰시기도 한 조해진 작가님의 문체가 나의 감수성에 잘 맞았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내가 공무원 시험을 한달도 채 남기지 않았던 공시생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던 때의 내가 이 책을 읽으니, 이 책과 그 당시 나의 주파수가 잘 맞았다고나 할까?
그때를 돌이켜보면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일 년을 더 해야할 텐데…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취업도 하고 학교도 졸업하면서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정체되는 건 아닐까… 등등 정말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 같은데, 그런 시기의 나에게 이 책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우리 같이 불행해지자’ 혹은 ‘너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등의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불행한 소설 속 인물들을 보니 그 당시의 내가 겪고 있는 불안과 걱정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공부’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지금 가는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걸 느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