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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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하는 대학 동기 두 명과 언제 한번 만나 진득하게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은 국문과를 복수전공하는 친구들이어서 ‘시’에 대해 매우 빠삭(?)하게 알고 있는 반면, 나는 그저 시라는 장르에 막 입문한 시린이(??)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그 친구들은 ‘시’라는 주제를 두고 나와 아주 심도 깊고 생산적인(???) 토론을 나누었다. 내가 정호승 시인님의 <슬픔이 택배로 왔다>라는 시집을 읽고 시의 세계에 입문했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너무도 당연한 건지) 둘 다 정호승 시인님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 친구는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집을 추천해주었고 다른 친구는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며 그 시가 수록된 시집을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었다. (놀랍게도 시집 제목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현듯 알라딘 중고서점이 눈에 띄었다. 세상 그 어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곧장 들어가 시집 코너를 살펴보니 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이 있었고, 책장을 열어 목차를 살펴보니 그 친구가 말했던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실려있던 것이다?! 이건 도무지 운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 짤로만 보던 ‘어머 이건 사야해’가 내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경험을 했고, 그렇게 나는 이 시집을 그대로 구매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알고 보니 이 시집은 일반적으로 발간되는 시집이 아니라, 그동안 정호승 시인께서 쓰신 시들 중 일부를 엄선하여 하나의 선집으로 묶은 ‘시선집’이었다. 그래서 ‘수선화에게’라는 메가히트작(?) 말고도 ‘풍경 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또다른 유명한 시들도 수록되어 있었다. 근데 뭐랄까… 시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았을 땐 정말 좋은 시인 것은 분명한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한편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보통 일반적인 ‘시인선’ 시리즈로 출간되는 시집은 보통 몇 개의 ‘부’로 나누어져있고, 그 안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은 주제가 나름의 통일성을 가지고 묶여 있어서 그 흐름을 느끼는 감각이 시집을 읽는 매력이기도 한데, 이 시집에서는 그런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완전히 처음 읽어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집을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어느정도 시에 대한 내공이 쌓인 사람들에게는 그냥 정호승 시인의 다른 시집 한 권을 통으로 읽는 것을 더 추천하고 싶다. 그래도 이 시에서 좋게 느껴졌던 시 구절 일부를 옮기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 <엽서> 전문


은행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은행나무 가지에 걸린 별 하나 따서

만지작거리다가 

편지봉투에 넣어 너에게 보냈는데

받아보았는지 궁금하다




📖 <수선화에게> 부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절벽에 대한 몇가지 충고> 부분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절벽은 있다

언젠가는 기어이 올라가야 할

언젠가는 기어이 내려와야 할

외로운 절벽이 하나씩 있다




📖 <풍경 달다> 전문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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