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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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민병훈 작가님이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물론 두 작품의 다른 점도 많기는 하지만 한없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는 공통점 만으로도 둘은 닮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단순히 ‘재미’만을 두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은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다. ‘흥미진진’이라든가 ‘긴박감’ 등의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매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이 작품의 매력을 소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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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 작품은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겪은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 문장 외에는 작품 내용을 더 설명하기가 힘들 것 같다. 하나의 큰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각 장면들이 별개로 주인공(아들)의 사유 혹은 그 사건으로 인한 영향 등이 서술되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에는 ‘소설’이라면 필히 가지고 있어야 할 서사성이 부족하다.(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이 책이 아주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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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단순히 ‘소설’로만 읽지 않았다. 분명히 이 작품의 문장들은 소설의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달력 뒤에 쓴 유서>에 담긴 이야기는 작가님의 실제 경험이 담겨있는 ‘자전적 소설’이므로, 아버지의 자살을 겪은 아들이 쓴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읽었다. 그렇게 읽다보면 이야기가 진행이 끊겨도, 갑자기 인물이 딴소리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물론 한번에 후루룩 읽기는 힘들지만, 끊어서 조금씩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로서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충분히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픔이 아니라,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아픔이다.

맞습니다, 죽음이요. 저는 가족력으로 이어진 우울증이 제게 당도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이겨내는 것이, 제게는 이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그것이 악성종양처럼 점점 커지게 놔둘 수 없었어요.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이해해야 하고, 그의 선택을 추측해야 했습니다. 저는 죽음으로 향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대비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소설로 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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