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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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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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TV 유튜브를 보다보면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들이 은근히 많이 언급되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정기현 편집자님께서 <나무 위의 남작>을 ‘인생책’으로 일컬으며 궁금증이 많이 생겼는데, 최근에 올라온 ‘민음사 직원들의 출근길 독서’ 영상에서 <반쪼가리 자작>이 언급된 것을 보고선 둘을 같이 구매했더랬다. <반쪼가리 자작>이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기도 하고,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첫 작품이기도 하여 <나무 위의 남작>보다 먼저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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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였다. 세계문학전집 치고는 아주 쉬운 문체로 쓰여있어 가독성이 좋고 전개도 흥미진진하여 술술 읽혔으며, 마지막 결말에 다다르니 작품이 던지는 교훈과 여운에 흠뻑 빠져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평소의 독후감에는 스포일러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결말에 대한 언급이 불가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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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렵 외삼촌은 갓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선과 악이 뒤섞인 막연한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터져나오는 시기였다. 그 나이에 우리는 새로운 모든 경험, 무시무시하거나 비인간적인 경험까지도 삶에 대한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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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은 인간의 본성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에 참전하여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몸의 한 반쪽만은 회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이 반쪽은 ‘악한’ 속성만을 가진 부분이었다. 때문에 그는 영주민들을 대상으로 가혹하고 혹독한 통치를 하게 되어 마을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한다. 이때, 자작의 나머지 ‘선한’ 반쪽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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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주민들은 악한 메다르도의 폭정에 지쳐있던 와중에 선한 메다르도 자작이 돌아왔기 때문인지 그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선한 반쪽은 영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물심양면 노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영주민들은 지나친 선행도 그들을 힘들게 한다는 걸 깨닫는다. 선한 반쪽의 자작은, 매일을 ‘순무’만을 먹을 정도로 가난한 ‘위그노교도’들이 조금 높은 가격으로 ‘호밀’을 유통하고 있는 것을 보고선 호밀의 가격을 낮추라는 잔소리를 일삼는다던지, 유흥과 쾌락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문둥병’ 환자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며 꾸짖는 등의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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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이 병존하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는 이 글에 적지 않겠다. 다만, 다 읽고 나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작품 자체는 환상적, 동화적인 가벼운 느낌이지만 작품이 주는 여운은 꽤 묵직했다. ’선’하기만 한 것도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평상시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선과 악이 불분명하게 공존하여 ‘온전’하게 될때서야 비로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현명해질 수 있으리라는 걸 <반쪼가리 자작>을 읽으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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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에는 작가가 ‘반쪼가리가 된 메다르도를 통해 도덕적으로 분열되고 상처받고 소외된 현대인들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두 성질로 나뉜 반쪼가리 자작이 서로를, 즉 자기자신을 적으로 삼는 대립의 양상은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었다. 신체는 완전할 지언정 내면은 불완전하여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자기자신을 적으로 삼는, 힘겨운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이 작품 <반쪼가리 자작>은 불완전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적’인 모습이라며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딱 70년 전인, 1952년에 출간된 아주 오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의미있는 교훈을 주는 것은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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