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만세 ㅣ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평점 :
<소설 만세> - 정용준 ⭐️
.
보통은 인스타에 올릴 독후감을 쓸 때는 ‘책을 완독한 직후’이지만, 이 책은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쓰고 있다. 정용준 작가님을 실제로 모시고 진행한 북토크를 갔다 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북토크에 다녀온 직후로써, 진정한 작가님의 ‘팬’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행복하다. 아무튼, <소설 만세>는 정용준 작가님이 ‘소설’을 대하는 태도나 철학 등을 엿볼 수 있었던 문학론 에세이다.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방법과 더불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나 과정 등의 인생사까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정용준’을 전보다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
장편소설과 비교했을 때 단편소설 속 주인공을 대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책과 북토크 모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편은 장편보다는 상대적으로 분량에서 제한이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보통의 단편소설들은 사건 하나 혹은 특정한 주제 하나만으로 전개되고 끝나기 때문에 어떤 인물에 대한 심리나 서사 등이 완전하게 풀어지지 못하고 그 사건 당시의 심리 묘사에만 치중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님은 그 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 (…) 죽고 싶었다. 이렇게 소설은 끝나지만 인물에게는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고려하지 않고 한순간의 감정과 감각에만 몰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아픈데, 어떻게, 얼마나 아프냐면 말이야, 묘사하고 보여 주는 것보다는, 어찌하여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인과, 고통의 전후, 슬픔의 전후에 대해 생각했고 소설이 끝난 이후 계속 살아 낼 그의 삶을 고민했다. (87-88p)
.
정용준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많은 ‘아픔’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아픔’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가진 인물의 내일과 미래 역시 작가님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작품집에 실려있는 단편 <떠떠떠, 떠>는 실제 실어증을 겪으셨던 작가님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인데, <떠떠떠, 떠> 속 인물은 그 ‘아픔’에만 매몰된 채 소설은 끝난다. 작가님은 실어증을 극복하셨지만, 소설 속 인물은 영원히 그 고통을 감내한 채 소설 속에 갇혀있다. 그 점을 깨달으신 작가님은 같은 소재, 모티프로 다른 결말을 가진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집필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이 이야기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 정말 흥미로웠다. 아직 작가님의 초기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고 가장 최근작 <선릉산책>만을 읽어보았지만, 다른 단편집들보다 정용준 작가님의 단편집이 유달리 마음에 더 와닿고 좋은 인상으로 남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다.
🗣 한 장면만 더, 혹은 한 장면만 덜 쓰자. 인물에게 여유를 주고 내일을 주고 걸어갈 길을 보여 주고 문을 열어주자. 지금은 그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쓰고 싶다. (89-90p)
.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말을 줄여야겠지만, 이 이야기 하나만 하고 마무리하겠다. (ㄹㅇ 투머치토커…) <소설 만세>를 읽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써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님은 타과생 신분으로 문예창작과 수업을 복수전공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신 분으로, 지금의 나랑 아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교육학과 학생이지만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이다. (군 제대 후 아직 복학을 안했기 때문에 문창과 수업을 들은 적은 없다.) 그때 당시의 작가님께서 갖고 있던 소설 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등이 지금의 내 감정과 너무도 같아서 크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께 따뜻한 위로와 따끔한 질책, 그리고 힘내라는 응원을 동시에 받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행복했던 독서는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