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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조해진 지음, 곽지선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1월
평점 :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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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해보는 ‘마음산책’ 출판사의 ‘짧은 소설’ 시리즈이다. ‘초단편’ 혹은 ‘엽편’이라 불리는 분량의 작품들이 엮여있는 소설집으로, 김초엽 작가의 <행성어 서점>과 최은영 작가의 <애쓰지 않아도>가 이 시리즈의 대표작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도 이 두 권만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 두 권이 같은 시리즈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방문했던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마음산책’ 출판사 부스를 방문한 순간, 눈이 돌아갈 뻔했다. 이 짧은 소설 시리즈가 책장 한 면에 이쁘게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니, ‘정지돈’ 작가님이나 ‘백수린’ 작가님 등 유명한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다 그곳에 있었다. 그 중 단연 내 눈에 들어온 작품은 바로 ‘조해진’ 작가님의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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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을 내 인생책으로 꼽을 만큼 정말 재밌게 읽었던 지라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특히 <단순한 진심>이 장편이었으니, 단편 소설집으로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짧은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구입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SF였기 때문이다. 사실 SF의 단편집으로 <종이 동물원>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시도했지만 매번 중도하차 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많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조해진’이라는 작가님 이름 세 글자만 바라보더라도 구매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싶어서 바로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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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좋았다. 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던 작가님이셨다. (조해진 작가님 사랑합니다. 앞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 부탁드립니다.) 물론 <단순한 진심>만큼의 임팩트나 깊이있는 여운 아니었다. 하지만 SF라는 점을 감안하여 나의 기대를 대폭 낮추었기 때문인지, 그런 기대는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SF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간단하게 적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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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SF를 싫어하는 이유를 먼저 말하고 싶다. 일단 나는 과학적 지식과 관심이 많이 부족한 문과생이다. (교양 과학에 관심을 가져보려 과학잡지 <SKEPTIC>을 읽어보기도 하였지만 역시나 중도 하차….)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SF소설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바이러스나 질병 등이 창궐하여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의 디스토피아라든지, AI 기술 등 과학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하여 인간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세계관이라든지, 외계인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우주의 세계관 등… 작은 소재 하나하나는 참신하게 다를 지언정 크게 바라보는 세계관은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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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도 마찬가지다. 수록된 작품들 대다수가 기후변화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지구에서 인간이 더이상 살아가기 힘들어진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다른 SF작품들과 다르게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에서는 차별되는 지점이 있었다. 다른 작품들이 해당 세계관으로 인한 시련 등을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전개된다면, 이 작품은 그런 전개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품집 중 가장 좋았던 <X-이경>, <X-현석>을 예로 들자면, 이 작품에서는 25%의 확률로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 예측되는 세계관이 배경이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혜성 충돌로 인한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애를 쓰는 인물들의 모습이 전개되었겠지만, 이 작품 속 주인공 ‘이경’과 ‘현석’은 애매한 25%의 지구 멸망 확률에 덤덤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에 대한 초조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인간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다만 SF인 만큼 해당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부분들에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단편 <closed>의 초반부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SF가 아닌 조해진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 SF도 이정도로 좋았는데, 다른 작품들은 얼마나 좋을까. 기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