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릉 산책> - 정용준 ⭐️

.

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믿고 보는 작가님 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나의 리스트에는 <단순한 진심>의 조해진 작가님, <천 개의 파랑>의 천선란 작가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의 김병운 작가님이 있다. 그런데 이 목록을 ‘리스트업’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서 한번 반했던 정용준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선릉 산책>을 읽으니, 이 작가님(의 작품)과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

보통 내가 단편소설집의 리뷰를 적을 때에는 단편 몇 개를 뽑아서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여러 개의 단편이 엮여있는 책을 읽다보면, 수록된 작품 중 별로라고 생각되는 단편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다 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단편에 ‘좋았다’를 베이스로 깔은 상태에서 ‘더 좋거나 덜 좋거나’를 겨루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단편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 하나하나를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간략하게나마 줄거리와 감상을 한줄 정도로 요약해보려 한다.

.

<두부>라는 단편에서는 잃어버린 반려견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돌이켜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먹먹한 여운을, 표제작 <선릉 산책>은 발달 장애 청년과 작중 화자의 쓰라린 교감과 뒤이은 어둡고 쓸쓸한 현실을, <두번째 삶>에서는 소시오패스(혹은 사이코패스)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유발된 서늘한 공포를, <이코>는 뚜렛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의 처절한 상황과 지쳐버린 마음을, <미스터 심플>은 가족이나 직업 등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글쓰기’를 통해 다시금 삶을 살아보려는 희망에 대한 애틋함을, 그리고 <스노우>에서는 불타버린 종묘를 바라보는 종묘 해설사의 허망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앞서 말했듯이 수록된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더이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며 폭탄 선언을 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 당황스러운 ‘아들’의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 및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서사는 책에서 직접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을 덧붙이지는 않겠으나, 삶을 더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어머니의 심정을 정용준 작가님은 이 작품에서 여과없는 문체로 세밀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이 그 마음의 낱낱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둔(?) 아들인 나도 작품 속 ‘아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까지 공감되어 적잖이 놀랐었다. 그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대치하고 있는 두 주인공의 마음이 모두 공감이 되었으니,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든 ‘나 자신’이 놀랍기도 했고 그 감정을 들게 만든 ‘정용준 작가님’께 놀라기도 했다.

.

정말, 정말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밌었고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선릉 산책>을 먼저 읽은 뒤에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었으면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소재 같은 것들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은 작품들이 있어서 <선릉 산책>을 읽은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몇 안되는) 별 다섯 개의 작품이었다. (어떻게 내가 감히 이 작품을 평가할 수 있겠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이 작품을 사주었던 아주 친한 동생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