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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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백수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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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기계적으로 진열되어있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주인장이 고심하여 책을 입고하고 공을 들여 진열하는 ‘독립 서점’을 좋아한다. 시간과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렇게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약속이 잡혀 서울로 나가야하는 일이 있으면 그 시간보다 일찍 집에서 나서서 독립서점 한 군데를 방문하고는 한다. <여름의 빌라>는 어느 서점 주인분에게 ‘처방’ 받듯이 추천받은 작품이었다. <단순한 진심>과 <천 개의 파랑>같이 따뜻한 분위기의 한국 문학을 읽고 싶다는 내 말에 주저없이 이 작품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이 작품을 추천하는 데에 단호하리만치 주저않는 당당한 주인분의 모습을 본 나는, 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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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궤적

🗣 하지만 아이가 나를 이곳에 뿌리내리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때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내가 아이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아이는 언젠가 나의 모국어조차 아닌 언어로 나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떠날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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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무無. 당신의 거실에 적혀 있던 글자처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기대하는 걸까요.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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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사건

🗣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 또 외로워 울고 싶었을 뿐. (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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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어쩌면 미국에 갈 때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엄마의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이후 그녀에게 생긴 커다란 구멍처럼 엄마에게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생겼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그녀는 엄마가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실은 그녀를 떠난 것을 후회하고 있기를 바랐다.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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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 그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지금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기보다는 인생의 단계 단계에 걸맞은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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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탕 캔디

🗣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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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동안에

🗣 여주의 무릎을 베고 얼굴을 올려다보거나 여주를 무릎에 누이고 내려다보노라면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한 존재의 마음이 이토록 환하고 충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행복해졌다.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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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 선주는 “너도 소중하지만 새 친구들도 똑같이 소중해”라고 나에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똑같이’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느라 봄을 온통 허비해버렸다. (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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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써온 리뷰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써보았다. <여름의 빌라>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수록된 8개의 단편은 모두 독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듯하였다. 작품 속에 쓰여있던 문장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가장 좋았던 작품, 별로였던 작품 등을 왈가왈부하는 리뷰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각 단편들마다 좋았던 문장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아무래도 문장‘만’ 보는 것보다는 앞뒤 맥락과 같이 접하는 게 훨씬 잘 와닿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장들만을 보더라도 따스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면, <여름의 빌라> 작품 전체의 완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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