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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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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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저를 죽여 줬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1p)

이 문장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 실격>은 엄청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우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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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의 내용은 ‘요조’라는 주인공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회고록이다. 고리대금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덕택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요조’는 항상 남보다 많이 가진 자로 태어난 데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회고록에는 여러 번의 자살 시도와 마약 중독, 정신 병원 수감 등 주인공은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이로 인해 발생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꾸밈없는 문체로 쓰여있다. 너무 현실성없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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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다 보면, 만약 ‘우울’을 의인화 한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요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주인공 ‘요조’는, 아니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모든 인생을 우울하고 비관적으로 살아왔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를 하고,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려다가 마약에 중독되기도 하며 (주인공은 모르핀, 작가는 파비날) 아내가 불륜을 저질러도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까지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천국’의 존재를 믿지 못할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았나 싶다. 

🗣 저는 하느님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채찍을 받기 위해 고개를 떨구고 심판대로 향하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지옥은 믿을 수 있었지만, 천국의 존재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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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토록 음울한 작품 <인간 실격>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자기 혐오적 삶에 대한 해명과 위로를 자기 자신과 독자들에게 건네기 위함’이었다. 작품 자체가 너무 비관적인 지라 읽으면서 씁쓸하고 처지는 기분이 계속 들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쉽게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한번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누구든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자존감이 곤두박칠치고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워지는 순간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힘겨운 시기를 지금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시기를 이겨낸 사람들이 <인간 실격>을 읽는다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자기혐오적인 주인공(작가)의 모습에서 유발한 공감으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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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에서는 <인간 실격>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자포자기한 모습이 단순히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의 혼탁한 면모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점에 주목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혹은 그를 극복한 개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공감을 샀던 부분은 거절을 쉽게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그 구절을 적으며 이 글을 마치겠다.

🗣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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