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의 여행자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
<밤의 여행자들>은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거상’의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시아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이 처음이라고 하니 국뽕이 차오를 따름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이니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작품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
이 작품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고요나’는 재난 여행사 ‘정글’의 수석 프로그래머로, 모종의 사건을 겪고 ‘정글’사의 상품 중 하나인 ‘사막의 싱크홀’에 참여(관람)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요나’는 일행과 낙오되고, 그 뒤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이 작품이 어떻게 추리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가 싶어 다른 리뷰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권위있는 ‘대거상’의 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했다는 것은 어찌됐든 이 작품이 추리 장르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책에 대한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혔다고 생각한다.
.
초중반부를 읽는 동안은 ‘요나’라는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느낌이라 긴장감이랄 게 딱히 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룬 ‘순문학’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요나’가 여행에서 낙오되면서부터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재난 여행 상품 뒤에 숨겨진 음모가 드러나는 과정을 보는 것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한 것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님의 표현력인 것 같다. ‘무이’라는 여행지의 풍경이나 등장인물들의 심리의 묘사가 탁월하여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더욱 잘 와닿았던 것 같다.
.
하지만 이런 뛰어난 문체가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다. (나빴다는 말은 아니다.) <밤의 여행자들> 속에는 자본주의에 찌들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군상들이 등장한다. ‘재난’을 재해로 여기지 않고 상품으로 취급하는 모습들이 나오고, 이는 결국 인간의 목숨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나 싶지만, 현실에는 이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 “모든 재난이 눈길을 끌 수는 없잖아요. 이슈가 되는 재난들은 따로 있어요. (중략) 웬만해서는 이제 큰 뉴스도 못 돼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동정하고 주목해준다 이겁니다. 세상이 너무 자극적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관심이란건 정직한 거니까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공감이 정말 많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중들의 관심이 자극적인 것으로만 향한다는 것에 특히 그랬다. 관심은 정직하니까. 마치 나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지적 같은 문장이었다. 그래서 ‘공감’과 ‘불편’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동시에 드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
이렇게 <밤의 여행자들>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데다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갖춘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만, 조금 추천하기 꺼려지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범인이든 범행 동기든 무언가를 추적하고 예상하는 과정이 나올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추리소설보단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다루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데,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의 나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때문에 생각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점이 더 좋은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보통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이 작품은 적당한 수준의 난이도와 재미를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관심이 드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