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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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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나인>이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렸었다. 다양한 장르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난잡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인>을 쓴 천선란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천선란 작가님의 이름을 알라딘 어플에 검색해보니 가장 처음으로 뜬 작품이 바로 <천 개의 파랑>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책의 호평 일색의 후기들을 몇 번 접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가며 바로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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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봇이 보편화된 2030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연재’는 경마장에서 기수 휴머노이드를 발견하게 된다. 연재는 그 로봇이 말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부서졌고 폐기될 예정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로봇을 연재가 구입하여 직접 고치고 ‘콜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불편이라는 단어는 연재보다 그의 어머니 ‘보경’과 더 잘 어울릴 듯 싶다. 하지만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던 ‘콜리’는 의도치 않게 등장인물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독자들에게도 따스한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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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올렸던 독후감들을 봤다면 알겠지만, 나는 SF장르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불편한 적도 있었고, 뼛속부터 문과인 내게 SF 장르 속의 과학적 세계관 및 내용이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SF에 대한 편견을 많이 깨부술 수 있었다. SF의 장르이면서 동시에 이렇게 따뜻한 느낌을 줄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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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과거에 얽매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과거에 얽매이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라 그 기억에 기분이 좌우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면, 나는 과거에 얽매여있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예전에 했던 본인의 말과 행동이 후회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방 털어내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를 속으로 되뇌면서 침체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훨씬 가깝다. 아니, 후자 그 자체다.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있다가도 후회스러웠던 과거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면 자기혐오의 시간이 또 찾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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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이 문장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친구들과 만나 술마시고 수다를 떨 때나 재밌는 책을 읽고 나서 그 여운을 즐길 때에는 과거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간혹 대화 주제나 책 내용이 과거 경험과 비슷하여 그 때가 떠오른다 할지라도 ‘뭐 어때’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곤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을 왜 몰랐을까’ 싶었다.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간과했던 것 같다. 이 문장을 읽으며 실제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듯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SF에서 위로와 힐링의 느낌을 받다니… SF에 대해 편협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또다른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