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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평점 :
<재인, 재욱, 재훈> - 정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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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다. 최근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작품을 다 읽었는데, 분량도 두껍고 내용도 생각할만한 거리들이 많아서 좀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국문학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느낌이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구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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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재인, 재욱, 재훈이라는 삼남매가 각각의 이상하고도 사소한 초능력을 하나씩 얻게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경장편 소설이다. 초반에 이 세 명이 함께 여행을 가서 칼국수를 먹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세 인물이 각자의 초능력을 깨닫고 그를 활용하게 된다. 과학 연구소 직원인 ‘재인’은 강력한 손톱을 얻게 되어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고, 중동으로 파견을 간 ‘재욱’은 위험을 감지하는 눈을 얻어서 인신매매의 위험에 빠진 여학생들을 구조한다. 또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을 가게 된 막내 ‘재훈’은 엘레베이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총기난사 사건으로부터 친구들을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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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기둥에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지는 이야기 구조가 신선했다. 세 명의 주인공이 초능력을 얻는다는 설정은 책 소개글을 통해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 명이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상상했었는데, 역시 정세랑 작가님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다. 솔직히 말해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나오고 초능력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세 명이 물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서 각자 능력을 알게 되다보니 한 명의 이야기가 재밌어지려할 때 바로 다른 인물로 장면이 전환되는 구조가 흐름을 조금 깨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남매가 본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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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정세랑 작가님은 묵직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무겁지 않고도 독자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작품에 잘 녹이시는 것 같다. ‘데이트 폭력’이라든지 ‘인신매매’ 등의 문제를 겪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적 문제들을 시사함과 동시에 주인공들이 문제 해결사로써 그들을 구해주는 전개를 통해 독자들에게 시원하고 통쾌한 마무리를 안겨주는 것이 ‘정세랑 월드’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훈훈하고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결말까지 정말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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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중략)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