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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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김혼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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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들과 군대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이상하게 술을 좋아하는 이미지로 자리매김이 되어있다. 하지만 주량은 소주 반병인데다 그렇게 자주 먹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항상 억울함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아무튼, 술>이라는 에세이를 추천받았을 때 무언가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술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자리의 들뜬 분위기는 또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튼, 술>에서 다뤄지는 김혼비 작가의 술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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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이었다. 허구적 이야기를 다룬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다루고 있어 상당히 현실적이었고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막연한 생각과 감정들이 작가의 필력으로 쓰여 익숙하고도 새롭게 느껴지곤 했다. ‘글맛’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폭소를 유발하기도 하고, 웃픈 공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메모장에 많이 적어두기도 했다.

🗣 [술과 욕의 상관관계] (칡주를 마신 후) “근데 너 지금 말할 때마다 칡 냄새 엄청 난다? 청하를 마시는 게 좋겠어”라는, 앞 문장이 어떻게 뒤의 문장으로 이어지는지 전혀 모르겠는 이유로 2차를 제안했다.

🗣 [와인, 어쩌면 가장 무서운 술] 저 멀리 집이 보였다. 누군가 몇백 미터 떨어진 집까지 걸어가는 나의 모습을 봤다면, 인류의 진화 과정을 역으로 구현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점점 등이 굽으며 몸이 앞으로 쏠리고 팔이 땅바닥을 향해 축축 처지는 게, 네안데르탈인은 애초에 지나쳤고 집까지 200미터쯤을 남겨놨을 때에는 완벽한 유인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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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많이 나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단 웃음만 나오는 ‘가벼운’ 작품은 아니었다. 김혼비 작가님은 이 작품에서 ‘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 [혼술의 장면들] 여자가 밥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걸 두고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많은 건, 그 행동에 무릅쓴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술 마시는 남자를 두고 멋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건 멋있는 게 아니라 그저 술을 마시는 건데.

내가 남자이기도 하고, 밖에서 혼술을 해본 적도 없어서 작가가 지적한 이 부분은 생각치도 못한 부분이었다. 여자가 밖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게 문제될 것이 뭐가 있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시비를 거는 (흔히 꼰대라 부르는) 장년층들도 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세상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아 부끄러웠고 반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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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에세이 시리즈 중에서 <아무튼, 술>에 대한 호평을 많이 접해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읽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소설을 주로 읽던 내게 ‘에세이’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고, ‘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웃음과 위로를 건네받기도 하였다. 역시 호평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주변에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길 바란다. 술을 좋아하는 건 ‘술 자체’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지만,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에 ‘술’이 위로가 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에겐 이 책이 색다른 공감과 위로를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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