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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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 천선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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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인’은 어느날 식물들이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나인은 본인을 보살펴준 ‘지모’에게 이에 대해 묻자 본인들이 사실은 외계인이란다.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본인과 같은 종족인 ‘승택’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며 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기 시작한다. 이와 별개로 2년 전에 같은 학교의 학생 ‘박원우’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인은 산에 있던 식물에게 사실은 박원우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친구 ‘미래’와 ‘현재’의 도움을 받아 단순 가출로 종결된 이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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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이 책을 완독하는 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슬펐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좋다’를 넘어서 ‘이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섬세한 문장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으로 나의 심금을 울린 것은 바로 ‘박원우’의 아버지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비통한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모를 것이다. <나인>에서는 장황한 묘사나 서술 없이 담담한 문체로 ‘박원우’의 아버지를 그려냈다. 그런 점이 오히려 더욱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선 슬프고 애통한 감정이 들기에, 자꾸만 책을 중간중간 덮게 되었다. 더 읽었다간 <나인>의 여운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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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원우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내게 큰 울림을 주는 것들은 많았다. 작중에서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주인공 나인, 현재, 미래의 마음과 행동들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그들의 행동은 타락해버린 어른들과 대조되어 더욱 빛나 보인다. 단순히 그들의 행동만 본다면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작가가 만든 문장들이 주인공들을 빛나게 했다. 

🗣 “저기 있다는 거 내가 알았는데 나야말로 그걸 어떻게 모르는 척해. 사람 한 명이 지구에서 멸종했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인>은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사건의 전체적인 흐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문장들을 하나씩 음미하며 읽는다면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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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하는 말이 들린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여러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판타지, SF, 성장, 추리, 사랑 등등…. 하나의 책 안에 다양한 장르가 내포되어있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전체 스토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들은 전개를 따라가기 힘들어할 수 있고, 꾸역꾸역 따라가더라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되버린다. 하지만 <나인>은 그렇지 않다. 선한 주인공들의 성장 서사와 사건 해결 과정, 그외 조연들의 다양한 사연들까지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져 <나인>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냈다. 책을 다 읽고나면 그 여운이 독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 책을 읽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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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400페이지 분량에 안에서도빽빽하다 있을 정도의 많은 글의 양과, 조금은 느리게 전개되는 사건 전체의 흐름이 독서의 난이도를 올려서, 독서 초보자에겐 쉽게 추천하지 못할 같다. 그래도 책이 주는 울림과 감동은 최근 읽었던 책들 중에선 가히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다시 읽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들을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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