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방대한 분량에(원고지 6000매) 질리어 시작하기 엄두 안 나지만 일단 붙잡으며 책을 놓기 어렵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책이다. 이 작가의 장기는 한 마디로 ‘이야기를 이끄는 뚝심이 강하다.’  ‘별 볼일 없는 인물도 작가가 슬슬 주무르면 빛이 나는 주요 인물이 된다.’  ‘우리 이웃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소한 일도 이 작가의 영감이 가미되면 심각하고 스토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주요 사건으로 전환된다.’

   <이유>를 처음 읽고 이 작가에 주목하게 되었다. 일본 작품의 독서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비록 추리소설의 장르지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이 외국 출장 중 나를 새벽에 일어나서 읽게 만들어 같은 룸메이트로부터 독서광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평도 듣게 하였다. 출판사 리뷰에 보니 미야베 미유키를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꼭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믿는다. 또한 ‘양억관’이라는 역자도 이 작품의 신뢰감을 더 하게 할 것이다.

 전 3권으로 1권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고 범인들이 방송을 통해 조금씩 공개하면서 사회와 대결하는 것으로, 2권에서는 범인이 공개되고 그 범죄로 인한 유족의 고통을, 3. 범인의 우두머리가 밝혀지고, 그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얽히고 갈등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긴장감을 느끼고 손에 땀이 나게 하는 부분이 1권이라 생각한다.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공교롭게도 ‘신이치’라는 학생에게 발견된다.  이 소설의 본 줄기는 아니지만 가족이 살해당한 ‘신이치’의 심리와 그가 이 사건에 개입하는 내용이 후반부까지 계속된다. 가족 살해의 범인의 딸 ‘히구치 메구미’도 살인 동기가 어찌 되었던 우리 사회의 피해자다. 아버지의 감형을 위해 ‘신이치’를 끝까지 스토킹하는 그녀의 갈등과 정신적 파탄은 산업화 사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감형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근거는 어디 있을까?   시게코도 그것이 궁금했다. 히구치 메구미는 뭐라고 해?  신이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다.”

 
“자기들은 그저 거품경제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쇼지는 화가 났는지 말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웃기는 놈들이군. 애당초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안 통하는 이야기야.”(본문 253.252)

1권의 전반부에서 르포기자 시기코나 신이치, 외손녀의 할아버지를 통해서 사회적 병리와 범인에 대한 추리를 계속해 나간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방송을 통해서 사회를 조롱하고 피해자 가족을 애태우면서 연쇄 살인을 계속한다. 범인들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이런 일련의 쇼킹한 충격을 즐기고 진화해 나간다.

  신이치는 계속되는 범인과 피해자 가족의 줄 달리기에 속에서 염려한다. 이 사회는 이 잔인한 범인들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 이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놈이 잡히더라도, 분명 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다. 범인 또한 사회의 희생자라는 논리로, 거기에 반론을 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희생자들만 가득하다. 신이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짜로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인가?”

  범인에 대한 추리는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다양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경찰은 수사에 별 진전이 없다. 피해자 가족들은  자책하고 또 자신을 혐오한다. 허둥대다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정신은 더욱 황폐화되어 간다. 얼굴 없는 범인은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런 처절한 광경을 즐기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리고 인물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나름대로 감성과 이유를 가지고 섬세하면서도 치밀하게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다. 그래도 1권에서는 피해자인 외손녀의 할아버지 요시오 할아버지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별거 상태의 딸이 자신의 자식이 토막 내어 살해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식을 잃게 되어, 요시오는 두부 공장을 생업으로 운영하면서 고독하게 범인과 맞선다. 때로는 범인을 훈계하고 또 수긍하면서 외손녀의 행방을 알기 위해 전전긍긍 한다. 아무리 위급하고 극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어른으로서의 담담하게 대처해 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퇴색되려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게 한다.

  나는 교통사고로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죽음으로서 이 소설이 끝나는 줄 알았다. 아직 이 소설의 제목‘모방범’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2권에서는 범인이 공개되고 차가 구르기 직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부분에서 약국집 아들 ‘구리하시 히로미’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로 시니컬한 웃음을 웃으며 등장한다. 히로미의 누나가 영아일 때 원인 불명으로 죽어서, 그의 부모가 누나의 이름을 그한테 그대로 쓰게 한다. 그래서 히로미 속에는 또 다른 히로미가 존재하여 그를 악의 소굴로 점점 더 빠지게 만든다. 그의 어머니의 과도한 죄책감이 히로미의 인격 형성에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친 것인지 정상적으로 사회를 보지 못한다. 이런 악의 연출자 히로미의 제물이 된 것은 ‘다카이 가르아키’이다. 히로미는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며 희희낙락하고 악마의 모드를 취하며 살게 되었을까. 위에서 언급한 가정의 불우한 성장 과정도 있겠지만 산업 사회에 대한 불만과 이상 성격장애, 폭력적 유전자의 결합의 산물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아주 교활하고 잔인한‘이마가와 고이치’는 표면적으로는 너무 잘 웃어 ‘피스’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진다. 뛰어난 두뇌와 조직적인 연출력, 담대함으로 악을 선도하는데 앞장선다. 암묵적으로 히로미를 조정하고 사회와 대담하게 겨루는 인물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는 분을 위하여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시게코라는 르포 작가에 의해서 결말로 달려가게 된다.

  “ 아무래도 이 범인은 자신이 저지른 일련의 사건을 ‘좋은 일’‘대단한 업적’ ‘평범한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일’로 자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살인은 범인에게 적극적인 자기주장의 수단이란 말인가. 등산가가 세계의 유명한 고봉을 정복하려 하거나 스포츠맨이 세계기록을 세우려 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공적’을 멋대로 도용하려는 인간이 나타난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인가?”

  이마가와 고이치는 자기 어머니가 돈만 알고 이리 저리 휩쓸릴 때 성장  과정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았는지 이 소설에서 잘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기 어머니도 연쇄 살인의 피해자로 만들어 벌이는 패륜적 행위를 하게 된다. 히로미도 자기의 부모를 폭행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은 개인보다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인식되어진다. 가족 구성원이 잘못이 있으면 그 가족 모두에게 주위 사람들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범인으로 오인되어 온 다카이 가르아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죄인처럼 숨어 살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여러 장치, 즉 호텔에서 다카이 가르아키의 동생이 투신하는 것 등 많은 장치의 설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흡함감이 있다. 현재의 수사기법을 상기하면 모순 되는 점도 있다. 히로미가 휴대폰으로 방송국과 통화하는 것은 오늘날 개념으로 보면 어이없다. 이 소설의 시점이 휴대폰과 호출기가 통용되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좀 그렇지만 이 것이  이 소설을 추천하는데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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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추리작가협회 수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추리라는 말과 영 어울리지
않고, 상 많이 받은 영화가 나를 실망시킨 경험이 있는 터라 읽기를 망설였다. 책 표지를 보면서
이 작품이 추리 소설이라면,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나 로맨틱한 내용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가미한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은 이 책 제목이 연애소설이라도 무난하고, 몽롱한 여자의 눈빛에 약간 입이 벌어진 입술을 부각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도입 부분에서 남녀의 질펀한 섹스신이 그려져 있어 착가하기  십상이다.

   이 작품은 범인을 가려내는 추리 기법에 유머러스한 문체로 살을 붙이고, 일본의 사회문제를 터치하면서 반전으로 읽는 사람을 멍하게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관되게 어떤 사건의 미로를 하나 하나 복선을 깔고 헤쳐 나가는 일반적인 추리 소설과는 다르다. 주인공이 탐정 수업을 하던 시기의 야쿠자 동료의 죽음을 밝히고, 사기성 판매에 얽힌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정도이다. 자신의 컴퓨터 수강생 안도씨의 딸을 찾는 과정은 오히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려는 휴머니즘에 가깝다.
 
  그런데 이 소설이 왜 1판 4쇄가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히고 추천되고 있는가? 일단은 흥미 위주의 내용 삽입이 많고, 위에서 언급한 유머스러한 문체가 한 몫 한다고 본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
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별 쇼킹한 내용이 없고 이야기를 이끄는 문체의 힘이 반감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반전도 문체 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상황적 장치가 있어 돋보인 것으로 판단 된다.
     
 주인공 나루세 마세토라는 어떻게 여자나 한 번 사귀어 보려고 덤벙거리고 실제로 가끔은 여자를 사서 욕망을 분출한다.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프리터로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의 일본 보통 젊은 남자로 그려진다. 어느 날 후배의 부탁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 판매를 하는 회사를 조사하게 된다. 이 것이 큰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자살하려는 여자를 구하고 다시 만나면서 말미에 가서 서로 연결이 된다. 삽입 내용인 나루세의 야쿠자 탐정 수업도 그런대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부분이 많다.

   심적으로 허약하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노인들을 사기 치는 치한들의 스토리는  우리나라도 현재 진행형으로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몇 십 년 전의 이야기인데 어쩌면 그렇게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지. 하기야 올 해 일본 고교에 가서, 우리나라 고딩들이 돈 받고 하는 방과 후 수업이 있느냐고 물으니 40년 전에 있었다고 답을 듣고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한 학교 방문에서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말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그리는 노인 문제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 노인은 이 사회의 짐이야. 요즘 노인은 여든, 아흔까지 너무 오래 살거든. 그저 곡식만 축내고 있어. 국가재정이
어려운데 국민의 4분의 1일 차지하는 노인들이 온갖 혜택을 받으며 감사할줄 모르는 쓰레기들이야.  2025년 되면 여자의 평균 수명이 90세가 되는 등 사회보장비용이 대폭 증가하여 국민부담률이 50퍼센트 가까이 되지. 그러면 이 나라는 침몰하는 거야.’(434.436 요약)    비록 악한 입을 빌어 말했지만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될 것이다.

  또한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기껏해
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벚나무는 살아 있어. 얼마 후엔 단풍이 들지.  빨
간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어.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선명하진 않고, 약간 은은한 빛을 띠고 있지.  꽃이 지면 다들 무시하지. 색이 칙칙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대부분은 단풍이 드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어.’ (506.508 요약)  일본의 사쿠라를 통한 노인의 쓸쓸한 말로는 추리소설답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노인 문제. 과연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아무튼 이 책은 무료하고 정신 집중이 잘 안될 때 읽으면 딱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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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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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추리해 보았다. 즉 잔혹하게 살해당한 시체를 요리하듯이 자유자재로 분리하는 것에 어떤 독자는 혐오감을 느끼며 구토를 하고 작가를 증오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성적 노리개로 농락하다가 죽이는 연쇄 살인범을 법으로 다루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통쾌할 것이다. 연쇄 살인범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는 것이 야만의 시대가 아닌 법치사회에서 용납될 수 있나하고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의 개연성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 소설은 아주 특이한 설정으로 많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을 확신한다. 주인공 덱스터 모건,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사사건건 개입하여 죽을 쑤고 있는 오늘날 미국처럼, 그는 경찰이었던 의붓아비 해리로부터 온갖 살인의 방법을 배운다. 덱스터에게는 또 하나의 덱스터가 존재한다. 마이애미에 보름달이 뜨면 또 하나의 덱스터가 연쇄 살인범을 살인하러 사냥을 떠난다.

혈흔을 분석하는 현직 경찰로서 덱스터는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연쇄적으로 아주 잔인하게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덱스터 모건은 냉혈한이고 살벌한 이미지로만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친동생은 아니지만 같은 경찰인  데보라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자신을 숨기기 위한 방편이지만 ‘리타’라는 여자와 사랑도 나누는 정상적 정서를 가진 자이다. 또한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스러운 덱스터의 언행은  잔인함에 소름이 끼치다가도 다소 숨통을 트이게 한다. 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덱스터의 시선은 성장 환경도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마이애미에서 연쇄적으로 창녀들이 살해당한다. 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억지 자백시켜 범인으로 만들고 소동을 피운다. 그런데 이 살인 현장에는 꼭 덱스터가 있다. 그래서 데보라가 자신의 경찰 지위를 유지하려 덱스터에게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간절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느 학교의 어두운 외진 곳에서는 직접 덱스터가 직접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도 있다. 덱스터는 범죄의 징후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또 하나의 덱스터의 짓인가? 아니면 초자연적 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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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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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쑤퉁의 이 작품은 장편 <쌀>을 읽고, 다음으로 읽은 책이다. 중국의 현대 작가 중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살아간다는 것>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쑤퉁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라는 <폐도>를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던진 후, 위화와 함께 쑤퉁은 나에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중국의 이야기꾼으로 각인되고 있다.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 기억으로는, <폐도>는 지나친 과장과 극단적인 묘사가 읽기를 중도폐지하게 만들었고 한동안 중국 현대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모옌의 3권으로 된 <풍유비둔>은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게 되었지만, 얼치기 포르노 소설이라는 성급한 판단에 또 그만두게 되었다. 역자가 신영복샘이라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접하게 되어 진지하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아무튼 이 책에는 중편 소설로 볼 수 있는 <처첩성군>, <이혼지침서>, <등불 세 개> 등의 작품이 들어있다.

  <홍등>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로 알려진 <처첩성군>은 제목 그대로 중국 봉건주의 시대의 처첩간의 암투와 갈등을 다룬다. 이런 부류의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가항력의 여성으로서 짊어지고 살아야 할 고단한 삶의 허무와 돈 없어서 팔려온 첩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의문이 가미되었다고 본다.

  그래도 4명의 첩들이 서로 각각의 개성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역동적이고 강렬하며, 유머러스한 작가의 문체를 빌어 잘 나타내고 있어 우리에게 재미와 흥미를 배가 시킨다.  다 늙은 남자의 4번째 첩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쑹렌은 당시의 불행한 한 여성의 운명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삶은 봉건주의 시대에 제도적 희생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처첩간의 갈등 등 인간의 기본적 욕망에 전력하는 전형적인 속물로서의 여성이 아님은 물론이다. 쑹렌은 의식 있는 여성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정체성에 끊임없는 회의를 가진다.

   그녀가 처음 그 늙은 남자네 집에 가서 의문과 관심을 가진 것은 한 적한 곳에 있는 깊고 깊은 우물이다. 젊은 첩들이 성적 욕망을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죽음의 종착역이 이 우물이다. 쑹렌이 우물에 대한 소문을 들으려하고 본인이 직접 이 우물을 드려다 보기도 한다. 깊고 깊은 속이 잘 보이지 않은 우물은 끊임없이 회의하는 그녀의 슬픈 삶의 미궁이기도 하다.

  이 책의 표제작 <이혼지침서>는 이혼에 대한 어떤 룰이나 엄청난 아이디어를 주지는 못한다. 어린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양보는 어느 날 뜬금없이 흔히 삶이 지루하고 힘들 때 외치는  ‘나 떠나고 싶어’처럼, ‘나 이혼 할래’ 라고 선언한다. 아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끝내는 무조건 반대한다.
   그는 아내가 마지못해 요구하는 위자료를 친구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빌려 주기도 하고, 아내의 처가 식구들한테 몰매를 맞으면서도 이혼에 골몰한다.  양보는 이혼에 성공한 사람으로부터 상담도 하고 하지만 이혼이 그에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이혼의 이유는 다른 여자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일반적인 이유가 되는데,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가정이라는 틀에서 억지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 아니면 무기력한 샐러리맨의 구역질나고 구태의연한 삶에 대한 반기?  어쨌든 작가의 유쾌, 상쾌한 문체와 유머러스한 구성으로 재미는 있다.

  다소 몽환적이고 동화 같은 소설 <등불 세 개>는 흥미 만점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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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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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의 일본 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나 심지어 작가에게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문외한인 내가 어느 신문사의 소개로 이 하위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것은 이젠 추리소설까지 일본 작품들이 독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중국의 고전도 일본에서 더 많이 번역되고 창작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전 뭐시라는 여자가 (지금 그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지만) 쓴 것이지 베낀 것인지 “뭣은 없다”라는 책에서 말한, ‘일본 사람이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시선 처리문제가 곤란해서다.’ 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두꺼운 문화층은 인정해야 한다.

   <이유>는 새로운 경향의 추리 소설인 것으로 보인다. 추리소설 형식을 띤 장편 가족소설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르포 형식을 빌린 논픽션 장르라 한다면 무리인가. 600 쪽에 가까운 묵직한 두께에 기가 질려 읽지 않는다면 본인만 손해 보는 격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뚝심 있는 필력에 버금가는 안정된 문체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이 시작부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소설이기 때문이다. 르포 형식을 빌려서 그런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요약과 심리 묘사가 아주 적절하게 배합되어 읽는 중 지루함을 느낄 틈을 없게 한다.

  우리의 욕망의 해방구 ‘타워펠리스’쯤 되는 ‘웨스트타워2025호’의 입주자가 어느 폭우가 몰아치는 날 한 명은 떨어져 죽고 나머지는 타살 당한다.  버불 경제와 함께 착공되고 붕괴와 함께 입주가 시작된 이 고급 호화 아파트는 많은 사람을 위선과 좌절 그리고 비열한 삶으로 전락 시킨다.  이 아파트가 버블이 낀 당시의 일본대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거액을 대출 받아서 어렵게 구입한 고이토 노부야스는 허세로 가득 찬 그의 아내 시즈코와 함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여 압류 및 경매를 당하게 된다. 이 아파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꼼수를 부려 버티기꾼을 고용하고 그들이 마침내 죽은 것이다. 버티기꾼도 한 가족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 각각 다른 사람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가족이라는 느슨한 유대를 엿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사건을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 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수의 가족 단위가 등장하여 서로 얽히고 관계한다. 각 가족의 공통 관심사를 통해서 당시의 사회를 재단하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입을 빌어 때로는 모순 되고 일그러진 욕망을 드러내고 시기하며 싸운다.  본인 자식도 아닌데 자기를 지금까지 키워준 ‘이유’만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거부한다. 또 어느 가족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리저리 부모 마음대로 끌려 다닐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임신을 시키고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겉만 멀쩡한 이 고급 호화 아파트처럼 허영에 들뜬 여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기위해 더 절망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고부간의 갈등에 가족이 괴로워하면서 또한 무관심하고 방치한다. 어머니의 성화를 해결하고 고부간에 조정 역할을 하기보다 처자식을 팽개치고 가출하여 수십 년을 떠돌다가 마침내 의붓자식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작가는  이 서글픈 작태를, 위태롭고 한심한 연극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때로는 한숨을 쉬면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삶이 서로 서로의 입장에서 어떻게 달라지고 제어되지 않는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불러 온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이야기 한다.

  위풍당당하게 과시하며 서 있는 고층 호화 아파트가 인간을 얼마나 간사하게 하며 위험의 굴레인지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기본적이고 양심적인 삶이 바탕이 되지 않은 어떠한 부도 명예도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아파트를 통해 제기 한다.

  일본의 부동산 버불 붕괴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10년 뒤에서 일본을 뒤따라간다고 한다. 대출금 상환, 버티기꾼
, 경매 등 최근에 많이 듣던 용어이다. 지금도 무리해서 대출금으로 집을 산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곳에도 많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라도 되면 살인 사건 보다 더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예측 가능한 경제 행위와 성실하고 건전한 삶에 대한 존중만이 오늘의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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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주에 도착한 책이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중에 하나라고 해서 주문했는데, 아직 읽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ㅋ
굉장히 독특한 책이란 느낌입니다. 제어되지 않는 욕망이 불러올 파멸이 어떤 것이지 확인하고 싶네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어놓고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네요.ㅎㅎ

독만권서(qkrtkdgh71) 2007-08-1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짱돌이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읽으시면 불순하고 짜증나는 날씨를 충분히 이겨 나가실 겁니다. 저는 지금 이 책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법1권을 읽고 있습니다. 역시 재미 짱 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