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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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의 일본 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나 심지어 작가에게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문외한인 내가 어느 신문사의 소개로 이 하위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것은 이젠 추리소설까지 일본 작품들이 독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중국의 고전도 일본에서 더 많이 번역되고 창작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전 뭐시라는 여자가 (지금 그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지만) 쓴 것이지 베낀 것인지 “뭣은 없다”라는 책에서 말한, ‘일본 사람이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시선 처리문제가 곤란해서다.’ 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두꺼운 문화층은 인정해야 한다.

   <이유>는 새로운 경향의 추리 소설인 것으로 보인다. 추리소설 형식을 띤 장편 가족소설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르포 형식을 빌린 논픽션 장르라 한다면 무리인가. 600 쪽에 가까운 묵직한 두께에 기가 질려 읽지 않는다면 본인만 손해 보는 격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뚝심 있는 필력에 버금가는 안정된 문체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이 시작부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소설이기 때문이다. 르포 형식을 빌려서 그런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요약과 심리 묘사가 아주 적절하게 배합되어 읽는 중 지루함을 느낄 틈을 없게 한다.

  우리의 욕망의 해방구 ‘타워펠리스’쯤 되는 ‘웨스트타워2025호’의 입주자가 어느 폭우가 몰아치는 날 한 명은 떨어져 죽고 나머지는 타살 당한다.  버불 경제와 함께 착공되고 붕괴와 함께 입주가 시작된 이 고급 호화 아파트는 많은 사람을 위선과 좌절 그리고 비열한 삶으로 전락 시킨다.  이 아파트가 버블이 낀 당시의 일본대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거액을 대출 받아서 어렵게 구입한 고이토 노부야스는 허세로 가득 찬 그의 아내 시즈코와 함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여 압류 및 경매를 당하게 된다. 이 아파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그는 꼼수를 부려 버티기꾼을 고용하고 그들이 마침내 죽은 것이다. 버티기꾼도 한 가족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 각각 다른 사람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가족이라는 느슨한 유대를 엿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사건을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 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수의 가족 단위가 등장하여 서로 얽히고 관계한다. 각 가족의 공통 관심사를 통해서 당시의 사회를 재단하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입을 빌어 때로는 모순 되고 일그러진 욕망을 드러내고 시기하며 싸운다.  본인 자식도 아닌데 자기를 지금까지 키워준 ‘이유’만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거부한다. 또 어느 가족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리저리 부모 마음대로 끌려 다닐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임신을 시키고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겉만 멀쩡한 이 고급 호화 아파트처럼 허영에 들뜬 여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기위해 더 절망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고부간의 갈등에 가족이 괴로워하면서 또한 무관심하고 방치한다. 어머니의 성화를 해결하고 고부간에 조정 역할을 하기보다 처자식을 팽개치고 가출하여 수십 년을 떠돌다가 마침내 의붓자식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작가는  이 서글픈 작태를, 위태롭고 한심한 연극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때로는 한숨을 쉬면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삶이 서로 서로의 입장에서 어떻게 달라지고 제어되지 않는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불러 온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이야기 한다.

  위풍당당하게 과시하며 서 있는 고층 호화 아파트가 인간을 얼마나 간사하게 하며 위험의 굴레인지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기본적이고 양심적인 삶이 바탕이 되지 않은 어떠한 부도 명예도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아파트를 통해 제기 한다.

  일본의 부동산 버불 붕괴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10년 뒤에서 일본을 뒤따라간다고 한다. 대출금 상환, 버티기꾼
, 경매 등 최근에 많이 듣던 용어이다. 지금도 무리해서 대출금으로 집을 산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곳에도 많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라도 되면 살인 사건 보다 더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예측 가능한 경제 행위와 성실하고 건전한 삶에 대한 존중만이 오늘의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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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주에 도착한 책이네요.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중에 하나라고 해서 주문했는데, 아직 읽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ㅋ
굉장히 독특한 책이란 느낌입니다. 제어되지 않는 욕망이 불러올 파멸이 어떤 것이지 확인하고 싶네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어놓고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네요.ㅎㅎ

독만권서(qkrtkdgh71) 2007-08-1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짱돌이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읽으시면 불순하고 짜증나는 날씨를 충분히 이겨 나가실 겁니다. 저는 지금 이 책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법1권을 읽고 있습니다. 역시 재미 짱 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