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쑤퉁의 이 작품은 장편 <쌀>을 읽고, 다음으로 읽은 책이다. 중국의 현대 작가 중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살아간다는 것>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쑤퉁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라는 <폐도>를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던진 후, 위화와 함께 쑤퉁은 나에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중국의 이야기꾼으로 각인되고 있다.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 기억으로는, <폐도>는 지나친 과장과 극단적인 묘사가 읽기를 중도폐지하게 만들었고 한동안 중국 현대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모옌의 3권으로 된 <풍유비둔>은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게 되었지만, 얼치기 포르노 소설이라는 성급한 판단에 또 그만두게 되었다. 역자가 신영복샘이라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접하게 되어 진지하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아무튼 이 책에는 중편 소설로 볼 수 있는 <처첩성군>, <이혼지침서>, <등불 세 개> 등의 작품이 들어있다.
<홍등>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로 알려진 <처첩성군>은 제목 그대로 중국 봉건주의 시대의 처첩간의 암투와 갈등을 다룬다. 이런 부류의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가항력의 여성으로서 짊어지고 살아야 할 고단한 삶의 허무와 돈 없어서 팔려온 첩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의문이 가미되었다고 본다.
그래도 4명의 첩들이 서로 각각의 개성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역동적이고 강렬하며, 유머러스한 작가의 문체를 빌어 잘 나타내고 있어 우리에게 재미와 흥미를 배가 시킨다. 다 늙은 남자의 4번째 첩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쑹렌은 당시의 불행한 한 여성의 운명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삶은 봉건주의 시대에 제도적 희생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처첩간의 갈등 등 인간의 기본적 욕망에 전력하는 전형적인 속물로서의 여성이 아님은 물론이다. 쑹렌은 의식 있는 여성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의 정체성에 끊임없는 회의를 가진다.
그녀가 처음 그 늙은 남자네 집에 가서 의문과 관심을 가진 것은 한 적한 곳에 있는 깊고 깊은 우물이다. 젊은 첩들이 성적 욕망을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죽음의 종착역이 이 우물이다. 쑹렌이 우물에 대한 소문을 들으려하고 본인이 직접 이 우물을 드려다 보기도 한다. 깊고 깊은 속이 잘 보이지 않은 우물은 끊임없이 회의하는 그녀의 슬픈 삶의 미궁이기도 하다.
이 책의 표제작 <이혼지침서>는 이혼에 대한 어떤 룰이나 엄청난 아이디어를 주지는 못한다. 어린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양보는 어느 날 뜬금없이 흔히 삶이 지루하고 힘들 때 외치는 ‘나 떠나고 싶어’처럼, ‘나 이혼 할래’ 라고 선언한다. 아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끝내는 무조건 반대한다.
그는 아내가 마지못해 요구하는 위자료를 친구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빌려 주기도 하고, 아내의 처가 식구들한테 몰매를 맞으면서도 이혼에 골몰한다. 양보는 이혼에 성공한 사람으로부터 상담도 하고 하지만 이혼이 그에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이혼의 이유는 다른 여자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일반적인 이유가 되는데,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가정이라는 틀에서 억지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 아니면 무기력한 샐러리맨의 구역질나고 구태의연한 삶에 대한 반기? 어쨌든 작가의 유쾌, 상쾌한 문체와 유머러스한 구성으로 재미는 있다.
다소 몽환적이고 동화 같은 소설 <등불 세 개>는 흥미 만점의 작품이다.